테마기획
거울 속 농약 산업…‘빅6’ 성장모델이 ‘빅6’를 겨눈다
신규 원제 개발비 30년 새 1억 5,200만→3억 100만 달러…출시까지 평균 12.3년
2026~2028년 고가 핵심 성분 특허만료 집중…연 850억 달러 시장 지각변동 예고
FMC 매각 검토·신젠타 홍콩 IPO·바스프 농업부문 분사·코르테바 분할 등 ‘도미노’
“현재 농약 산업은 제약산업이 먼저 걸어갔던 길을 10~15년 뒤따라가고 있는 중”
실험실에서 태어난 하나의 ‘물질(원제)’이 특허라는 갑옷을 두르고 한 세대 동안 시장을 지배한다. 이 단순한 공식이 글로벌 농약(작물보호제) 산업을 세계 최강으로 키웠다. 그런데 바로 그 공식이 이제 산업 자신을 겨누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허 독점이 벗겨지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신규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드는 시간과 돈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났다. 한때 무기였던 ‘특허 독점’ 모델이 이제는 발목을 잡는 족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 컨설팅사 비즈업스트래티지(Bizup Strategy)의 크리스티안 페레이라(Christian Pereira) 전략가는 최근 AgNews 기고에서 이 국면을 ‘거울 앞에 선 산업’에 비유했다. 그는 “거대 산업에는 누구나 한 번쯤 거울 앞에 서는 순간이 온다”며 “자신을 정상에 올려놓은 그 성공 공식이 어느 날 자신을 무너뜨리는 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지금 농약 산업이 그 거울 앞에 섰고, 거울에 비친 모습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이미 진행형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페레이라 전략가는 “전환이 일어날 것이냐는 더이상 질문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며 “진짜 전략적 질문은 누가 이 변화를 이끌고, 누가 휩쓸려 가느냐”라고 강조했다. 제약·자동차 산업이 먼저 본 ‘거울 속 모습’ 농약 산업이 이런 순간을 처음 맞은 것은 아니다. 앞서 같은 국면을 지나온 거대 산업들이 있고, 그 결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약(製藥)이다. 제약산업은 약 15년 전 ‘특허 절벽(patent cliff)’을 맞았다. 2011~2012년을 전후로 화이자의 콜레스테롤 치료제 리피토(성분명 아토르바스타틴)를 비롯한 초대형 블록버스터들이 줄줄이 특허를 잃었고, 한 해 100억 달러를 넘던 매출이 값싼 제네릭(복제약)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충격의 본질은 매출 감소가 아니라 모델 그 자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약 발견부터 임상·생산·판매까지 전 단계를 한 회사가 틀어쥐던 수직계열화 구조가 모든 단계에서 최고일 수는 없다는 현실 앞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후 제약사들은 사내 신약 발견에 집착하던 전략을 접고 외부 바이오테크와의 제휴·인수, ‘규모의 플랫폼’ 전략으로 방향을 틀어 자신이 가장 잘하는 단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도 같은 경로를 밟았다. 100년 넘게 산업을 떠받친 내연기관(엔진) 중심 모델이 전동화(電動化)라는 정면 도전을 받았고, 테슬라 같은 신생 기업과 각국의 탄소 규제가 게임의 규칙을 통째로 바꿨다. 역설적이게도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엔진 기술의 우위가 오히려 전환의 발목을 잡았다. 정밀한 엔진 기술 자산의 가치가 전기차 시대에 줄고 가치의 무게중심이 배터리와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면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자신의 핵심 경쟁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막대한 전환 투자에 나서야 했다. 두 산업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강점이 곧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자신을 키운 바로 그 모델이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됐고, 똑같은 순간이 이제 농약 산업 앞에 서 있다는 진단이다. “이미 ‘특허 독점’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 수십 년간 글로벌 농약 산업의 논리는 단순했다. 독자적인 신물질(신규 원제)을 발견해 특허로 보호한 뒤 독점 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였다. 이른바 ‘빅6’로 불린 바스프·바이엘·다우·듀폰·몬산토·신젠타는 이 모델의 힘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문제는 이 모델에 ‘시간’과 ‘시장의 물리 법칙’이라는 두 개의 집요한 적(敵)이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농화학 시장조사기관 애그바이오인베스터(AgbioInvestor)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유효성분(원제)을 실험실에서 농경지까지 끌어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1995년 평균 1억 5,200만 달러였으나 2014~2019년에는 3억 100만 달러로 명목 기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첫 개발부터 상업화(제품 출시)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12.3년에 이른다. 비용은 더 들고 시간도 더 걸리는 반면, 제품화되는 신규 원제는 더 적어지고 있다. 글로벌 농화학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지출 중간값은 지난 15년간 사실상 정체됐고, 그 초점도 신물질 개발이 아니라 제품 수명주기 관리와 제형(製形) 차별화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물질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공급망 전체를 틀어쥐던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2026.06.17. 「인터넷」 농약 혁신 다음 무대는 ‘신규물질’ 아닌 ‘똑똑한 원제’》 이는 글로벌 농화학 기업 경영진들의 공통된 시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려오는 ‘특허 절벽’…연 850억 달러 시장의 재편 수십 년간 주요 기업의 매출을 떠받쳐 온 블록버스터 제품 상당수가 독점권을 잃고 있다. ‘Crop Protection’s Mirror Moment’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살균제 프로티오코나졸(Prothioconazole) 한 품목은 2023년 세계 시장에서 1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한때 세계 최대 살충제였던 클로란트라닐리프롤(Chlorantraniliprole)은 2022년 물질특허가 만료됐다.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유효성분 105개가 특허 보호를 잃었다. 이 보고서는 2026~2028년으로 이어질 다음 주기에 아직 독점 상태인 최고가 원제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고 분석했다. 연간 약 850억 달러 규모의 농약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변화는 양면적이다. 농업인에게는 선택지 확대와 가격 하락, 농화학적 유연성 향상을 의미하지만, 다국적 기업에는 강제된 전략적 재정비를 뜻한다. 페레이라 전략가는 “이 방정식의 어느 편에 서 있느냐가 향후 10년의 운명을 가른다”고 전망했다. ‘製藥’의 교훈…“화이자는 화이자이길 고집했다” 거대 제약업계가 지나온 길은 농약 산업에 직접적인 참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체 특허 절벽이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모든 단계를 통제하던 수직계열화 모델을 무너뜨렸고, 제약사들은 모든 단계에서 효율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신물질 개발 대신 ‘규모의 플랫폼’으로 선회했다. 그 선회가 정체성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핵심으로 꼽힌다. 농업기술 창업가 맷 크리스프(Matt Crisp)는 “화이자는 내부 신약 개발을 줄였다고 해서 화이자이기를 멈추지 않았다”며 “가장 잘하던 일을 더 잘하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농약 산업은 제약보다 대략 10~15년 뒤처져 있지만, 누군가 먼저 지나간 길에서 배울 수 있다는 이점을 지녔다는 평가다. 흔들리는 ‘빅6’…매각·분할·IPO·분사 ‘도미노’ 글로벌 농화학 ‘빅6’의 구조적 ‘경고등’을 보여주는 구체적 신호도 잇따르고 있다. AgPages와 애그바이오인베스터(AgbioInvestor) 보고서 등에 따르면, FMC는 2025년 4분기 17억 2,000만 달러의 GAAP(미국 회계기준) 순손실을 기록했고, 2026년 2월 이사회가 회사 매각 가능성을 포함한 전략적 선택지 검토를 승인했다. 신젠타는 2026년 2분기 홍콩 증권시장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해 최대 100억 달러를 조달하는 4분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스프는 농업솔루션(Agricultural Solutions) 부문의 프랑크푸르트 증시 상장(2027년 준비 완료)을 계획하고 있으며, 해당 부문의 추정 가치는 약 200억 유로로 알려졌다. 코르테바는 2026년 4분기 작물보호와 종자 사업을 각각 독립된 두 개의 상장사로 분할할 예정이며, 바이엘은 글리포세이트 소송이라는 거대한 부담을 여전히 떠안고 있다. [표] 글로벌 농화학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특정 기업의 위기라기보다 하나의 사업모델 전체가 구조적으로 무너지는 신호로 해석한다. 중국의 ‘과잉설비 함정’과 인도의 ‘하이브리드 전략’ 후발주자들의 대응도 엇갈린다. 중국은 후발주자의 정석을 정밀하게 실행해 왔다. 특허 만료를 기다렸다가 저비용 통합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네릭 유효성분의 세계 공급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한동안은 통했지만, 모두가 같은 창(窓)을 바라보면서 그 창이 빠르게 닫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케이네텍(Kynetec) 자료에 따르면, 피록사설폰(Pyroxasulfone)이나 S-메톨라클로르(S-metolachlor) 같은 성분에서 중국 제조사들의 계획 생산능력은 이미 실제 농지 수요를 크게 넘어섰다. 시장 수요를 웃도는 설비 투자가 잇따르면서 투입 자본을 회수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진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과잉설비 함정’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기에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B2B 역학도 더해진다. 마진 압박에 시달리는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공급업체에 추가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서도 장기 물량 약속은 내놓지 않는 구조때문이다. 양측 누구에게도 좋은 결말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중국 농약 업계 일부는 최상위 공급망 확보로 전략의 초점을 옮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물질에 투자하고, 글로벌시장에서 자체 등록을 확보하며, 차별화된 제형과 농가 직접 브랜드를 구축하는 식이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시장 가격에 끌려가는 대신 마진을 스스로 설계하는 기업으로의 근본적인 체질 전환이 요구되는 대목으로 읽힌다. 반면 인도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AgPages에 따르면 UPL, PI인더스트리스 같은 기업들은 순수 제네릭도, 전통적 혁신기업도 아닌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축했다. 신흥시장에서 수십 년간 쌓은 관계와 상대적으로 기민한 규제 환경을 무기로 삼는 전략을 통해 ‘제네릭 플러스’가 대규모로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청사진으로 주목받는다. 유럽발 규제 격차가 키우는 농약 산업의 위기 유럽 밖에서 과소평가 받기 쉬운 변수로 ‘시장 간 규제 비대칭’이 꼽힌다. 유럽연합(EU)이 ‘위험(risk) 기반’에서 ‘위해성(hazard) 기반’ 등록 체계로 전환하면서 이미 수십 종의 기존 화학물질이 유럽 시장에서 퇴출됐고, 신규 유효성분이 통과해야 할 승인 통로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 결과 유럽 농업인이 쓸 수 있는 약제와 북미·중남미·아시아에서 쓸 수 있는 약제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유럽 등록이 글로벌 수익 구조의 핵심인 기업에는 ‘복합적 위험’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규제 압력은 특허 절벽을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혁신 공백’의 긴급성을 가속한다고 보고 있다. 다음 10년을 가를 세 가지…AI·생물농약·생태계 그렇다고 농약(작물보호제)의 미래를 ‘화학의 종말’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멀게 느껴지던 기술과 결합한 ‘화학의 재발명’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그 축은 크게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는 인공지능(AI) 기반 신물질 발견이다. 2025년 5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코르테바의 농업솔루션 담당 부사장은 AI 덕분에 후보 물질 1만 개를 수 주 만에 모델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통적 방식이라면 수년이 걸렸을 일이다. 에보진(Evogene)의 자회사 애그플레너스(AgPlenus)는 제약 모델에서 직접 물려받은 ‘표적 기반 발견’ 접근으로 이를 한층 더 밀어붙이며, 코르테바·바이엘 양사와 신규 작용기작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해충의 단백질 구조를 거의 0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단 몇 초 만에 예측하는 일은 신물질 개발의 경제학 자체를 바꾸고 있다. 둘째는 경쟁자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생물농약이다. 생물학적 방제의 성장은 규제 유행이 아니라 실제 압력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커지는 저항성, 줄어드는 화학물질 등록,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 수요가 그 압력이다. 글로벌 생물농약은 핵심 분야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발효, 마이크로바이옴 과학, 자연 유래 물질에 대한 투자를 가속하고 있다. 결국 승자의 모델은 화학과 생물제제를 같은 방제 체계 안에 통합하는 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셋째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다. 코르테바-마이크로펩(펩타이드 기반 생물방제), 신젠타-프로비비(페로몬 기반 열대거세미나방 방제), 신젠타-엔코(살균제 저항성을 겨냥한 신규 작용기작) 와 같은 상호협력은 단발성 거래가 아니다. 거대 기업이 점점 ‘확장 플랫폼’으로 행동하고, 더 작은 혁신기업이 초기 위험을 떠안는 구조적 전환을 보여준다. FMC벤처스와 Syngenta벤처스에서 전무이사를 지낸 마크 브룩스(Mark Brooks)는 “지금 최고의 혁신 상당수가 기존 대기업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놓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변화의 본질을 짚는 목소리도 있다. 엔코(Enko)의 최고경영자(CEO) 토니 클렘(Tony Klemm)은 “환경은 바뀌었는데, R&D 모델의 상당 부분은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R&D 모델’을 ‘사업모델’로 바꾸면, 그 진단은 다국적 기업과 유통업체, 제형업체, 나아가 시장 생태계 전체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