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게임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인생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인생은 도박이라는 생각에 비하면 경쾌하다. 게임은 승부를 동반한다. 인생 매사를 승부하듯 사는 이들이 있는데, 대체로 수명이 짧다. 물론 승부가 경쟁 관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과의 승부, 특별한 세계를 향한 탐구와 도전도 승부의 하나다. 그런 승부사들을 프로페셔널 혹은 장인이라 부른다. 올림픽이 끝났다. 폭염과 바이러스의 공격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준 게임들이 제법 있었다. 재미삼아 동료들에게 물었다.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 대부분 김연경을 꼽았다. 올림픽 막바지의 극적인 승부들이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 뒤로 높이뛰기의 우상혁, 탁구의 신유빈 등등이 나왔다. 모두 메달을 못 딴 승부사들이다. 올림픽을 보는, 게임을 즐기는 사고가 과거와 달라진 느낌적 느낌이 든다. 이번 올림픽 참가국은 205개국(IOC 회원국 206개국 중 북한이 불참했다), 게임 종목은 33개, 선수는 1만1656명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 숫자에 함정이 있다. 사람 외에 동물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하게 동물이 참여하는 게임, 승마.
#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단편소설이라 웬만하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내가 처음 그 소설을 읽었을 때, 왜 교과서에 실렸는지 다소 의아했었다. 사랑인 듯 사랑 아닌 듯, 슬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쨌거나 좋은 작품이니까 교과서에 실렸겠지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왜 사랑방이지? 사랑방이 사랑의 방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사랑방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뒷방이나 건넌방이나 곁방과는 느낌이 달랐다. 작가도 그런 언어 이미지를 활용한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사고방식으로 보면 꼬마의 어머니나 사랑방에 묵었던 손님이나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밀당을 하는 방식도 답답하고, 어린아이를 메신저로 이용하는 수작도 왠지 비겁한 느낌을 준다. 이 소설의 독후감을 다소 삐딱하게 쓴다면,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꼬마가 소문내는 작품이라 하겠다. #2 시대를 건너뛰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때는 이해가 되고 자연스러웠던 행동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황당하고 당황스럽게 바뀌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겪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섯 살짜리 꼬마 옥희가 아니라 어머니
#1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누구나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복잡한 과학적 기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식물은 한 곳에 고착해 광합성 활동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동물은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먹이를 섭취한다. 식물과 작물의 차이는 더 간단하다. 식물은 자연 생태계 속에서 고착 생활을 하는 생명체 전반을 말하고 작물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재배하는 식물들이다. 지구의 생태 순환 원리에 맞게 제각각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교배 방법으로 후손들을 퍼뜨려 왔다. 하지만 작물은 그들과 근본이 다르다. 사람에 의해 키워지고, 사람을 위해 열매를 맺는, 인위적 노력의 산물이다. #2 지구 최초의 작물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밀이다. 조금 넓게 잡으면 밀, 보리, 콩 등의 곡물들이다. 수렵과 채집으로 자연 생태에 따라 생존하던 동물적 인간들이 한 곳에 정착해 집단생활을 하면서 문명이 시작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곡물을 인위적으로 양산하는 것이 필요조건이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밀이었다는 주장은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밀 재배지였다는 점에서도 일리가 있다. 독일의 생태학자 한스외르크 퀴스터는 <곡물의 역사>에서 ‘최초의 경작지부터
#1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던 (지금도 잘 구분하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때, 새벽 산책을 하던 늦봄의 기억이 난다. 천변을 걷다가 둑방 밑으로 옹기종기 피어난 노란색 꽃향기를 맡고 있는데 지나던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은 내 옆에서 이슬에 맺힌 풀잎을 툭툭 털더니 코끝에 갖다 댔다. 잎에도 향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읽었는지 노인이 말했다. “새벽이슬 머금은 잎 향기는 보약보다 좋은 걸세.” 마치 도인처럼 한마디 던지고는 휙휙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10년 20년이 지나도록 그날의 기억은 반복해 떠오른다. 가끔 새벽 산책을 나가게 되면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노인 때문일까, 향기 때문일까. #2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엇비슷하게 맞아간다고 믿고 있던 30대 때, 시골에 사는 기타리스트를 만난 적이 있다. 제법 긴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며 음악과 시골의 궁합에 대한 얘기를 듣고 헤어질 무렵이었다. 읍내에 함께 나와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은행엘 같이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CD기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창구에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창구 직원과 뭔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타리스
#1 “국경을 넘나들 때 사람에게 관세를 부과합니까?” “???” “우리에게 쌀은 사람과 똑같은 겁니다.” 약 20년 전, 쌀 관세화를 위한 무역협상이 한창일 때 이런 대화가 있었다. 세계 각국이 해를 거듭하며 길고도 지루한 협상을 이어나갔는데 결국 한국은 쌀 개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같은 질문과 주장을 한다면 먹힐 수 있을까 음미해본다. 십중팔구 ‘그게 뭔 소리람?’하고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싶다. 통상 관련 협상을 오래도록 했던 전직 관료와 식사를 하며 들은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손주들까지 장성한 ‘진정한 노인’이 되어 유유자적 살아가는 분이다. 과거에 겪었던 이런저런 외교, 협상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서 몇 가지 궁금증도 풀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통상에 관한 협상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삶에 민감한 것들이라 나라들마다 치밀하게 준비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늘 변수가 일어나지요? 제일 큰 변수는 어떤 걸까요?” “사람이지요. 누구를 만나느냐, 그와 교감이 잘 되느냐, 이런 거.” “오래도록 교류한 이들도 아니고, 나라를 대표해 나온 사람들과 교감이 가능한가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다는 의미
#1 이제 팬데믹(pandemic)이란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원을 찾아봤더니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등장했다. 팬데믹은 ‘pan’과, ‘demic’의 합성어다. demic은 ‘사람’을 가리키고 pan은 ‘전체, 모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두산백과사전 외 다수의 용어사전). pan이란 음의 의미를 두루 찾아봤더니 언어별 공통점이 보였다. - 그리스어 pan : 전체, 모두, 우주 - 라틴어 pan : 숲 ·들 ·목동의 신 - 독일어, 프랑스어 pan : 목축 ·숲의 신, 우주신 -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pan : 빵, 양식 - 산스크리트어, 한자문화권 汎 : 널리, 전체에 걸치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pan이라는 음은 두루 넓고 전체적인 느낌을 준다. 들판과 우주처럼 광대한 것을 말하는 한편 가장 기본적인 음식, 이를 주관하는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쟁의 신, 바다의 신, 술의 신, 아름다움의 신 등등 수많은 신이 있지만 먹거리를 책임지는 신보다 중요할까 싶다. 우리말사전에는 ‘판’이 이렇게 정의돼 있다. 1. 일이 벌어진 자리. 또는 그 장면 2. ‘처지’, ‘판국’, ‘형편’의 뜻을 나타내는 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골로 내려간 지 10여 년 된 후배를 만났다. 어떤 때는 시니컬하고, 어떤 때는 훈훈하고 어떤 때는 무정해 보이곤 한 후배였다. 약속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앉아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슬쩍 보았다.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였다. 짜식, 여전하네, 라고 말하며 시골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다. 때로 시니컬한 후배가 훈훈하게 말했다. “살 만해요.” “다행이네. 하긴, 벌써 10년은 됐지?” “그렇죠. 근데 뭐 10년이란 게 뭐 중요한가요?” 훈훈한 표정의 후배가 시니컬하게 되물었다. 하긴 그렇다. 세월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절대적인 척도도 아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들고 말했다. “이 사람 책 중에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본 적이 있는데 네 생각이 자꾸 나더라.” “꼭 그렇지도 않아요. 보기 나름이죠. 시골은 그런 것이기도 하죠.” 결국은 해석과 대응의 문제인 것이 딱히 그 책에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몇 가지, 떠오르는 구절이 있어서 시골사람이 된 후배에게 물어 보았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제법 잘 사는 집안의 친구에게서 부음 소식이 왔다. 요즘 문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져 그야말로 간단하게 인사치레를 했고, 한 달쯤 지나 위로주를 나눴다. 그날의 대화다.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셨다.” “그야 뭐, 우리가 다 알고 있지.” 고가의 집은 정평이 나 있었고, 해외여행을 즐기셨는데 늘 1등석만 타신다는 부친이었다. 유산도 꽤 되리라는 짐작이 들었고, 그로 인해 형제간 불화는 없었나 염려도 되었다. 친구가 답했다. “장례 치르고 재산 정리를 하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귀 쫑긋. 이런 호기심은 본능이다). “마이너스 500을 남겼더라구.”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집값만 해도 얼마이며, 아버지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놀란 토끼가 된 내게 친구가 웃으며 털어놓았다. “자식들한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을 테고, 아무 신세도 지지 않겠다고 말씀은 하셨었지. 홀로 되신 뒤로(그의 모친은 부친보다 10여 년 먼저 떠나셨다) 별 수입이 없으니 집을 담보로 끝없이 대출을 받아 썼더라고. 그리고 재산이 마이너스로 넘어가자 돌아가신 거지.” 부의금까지 정리하면 그야말로 ‘똔똔’으로 마감한 인생.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 축하한다고
어젯밤 10시 무렵 동료들과 헤어져 지하철로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 출근길처럼 붐비는 전철 안에서 내내 서서 귀가해야 했다. 외식업체 영업이 10시까지 허용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귀가 길에 오른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기야 9시 마감이던 시절에는 10시 넘어 퇴근할 때의 거리가 너무도 한산해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방금 전 술을 같이 마시던 동료들도 요즘 생활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몇 가지 대표적인 논조를 옮겨 보자. “바깥 생활이 확 줄어들어서 살만 찌고 있어.” “회식 없고 술자리 줄고… 나는 오히려 건강을 챙기는 계기가 된 것 같은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이렇게 많아보긴 평생 처음이네.” “그래서 좋은가? 난 핀잔 듣는 시간이 늘었고 머잖아 쫓겨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투의 대화를 잇다가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고 자리를 파한 차였다. 환경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생활의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제각각 다른 셈이다. 한 사람은 지난해 은퇴했고, 한 사람은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으며, 한 친구는 진즉 계획을 잡아 시골에서 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순서대로 그들의 일상을 들었다. “
#1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라는 얘기(과학적 조사인지, 주장인지는 확실치 않다)를 들은 적이 있다. 꽤 오래 전, 아마도 10대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그래서 붕어 낚시가 가능하구나’, 옆에서 낚여 올라가는 친구를 보고도 3초만 지나면 까먹으니까 또 낚싯밥을 먹는 붕어… 또 하나는 ‘그래서 좁은 어항 속에서도 오래 살 수 있구나’, 이쪽 끝으로 왔다가 막혀 돌아가는 사이에 모든 걸 까먹으니 그에게 어항은 망망대해나 다름없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흘러 다시 붕어의 3초를 떠올리니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3초의 기억력이라면 하루에도 수천 번 경이롭게 세상을 보지 않을까. 신기한 세상살이, 그야말로 3초의 행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럽다, 금붕어. #2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선배와 주말 회동을 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코로나 불루가 도마에 올랐다. 약간의 폐쇄 공포증이 있는 선배, 집안에 오래 있으면 감옥생활처럼 느껴져 가끔은 가슴에 통증까지 온다고 토로했다. 남편이 암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상태라 외출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호소. 나가도 불안, 들어앉아 있어도 불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가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1 겨울이, 마침내 가고 있다. 수많은 겨울들 중에서 특히 잊지 못할 겨울이 될 것 같다. 매년 한번은 겪고 넘어가던 감기를 올해에는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아직은 겨울, 환절기가 남아 있지만).코로나 때문에 극도로 조심한 것, 마스크가 찬 공기를 막아준 것, 손을 자주 열심히 닦은 것 등등의영향일 텐데… 은근히 불쾌한 것도 사실이다. 해마다 감기에 걸렸던 원인이 위생 불량에 있었다는반증을 확인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내과에 손님이 없어 병원들의 시름이 깊다는 풍문도 들린다. 손 씻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후배민이가 떠오른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뿐이 아니라일상 중에도 손을 자주 씻었다. 자판을 한참 두드리고 난 뒤, 커피를 마시기 전과 후, 누군가와 악수를 하고 난 뒤에도 슬그머니 화장실(세면실)을다녀오곤 했다. 다녀온 뒤 핸드크림 바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것도 일종의 결벽증’이라고 농담삼아 핀잔을 주었던 회상을 한다. 돌이켜보니 민이가 옳았다. 반성하고 사과한다. #2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씻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것 같지만 인류사에서 보편화된 것은 고작 백 년도 안 된다. 선진국이라 추앙받아 온 유럽에서도산업혁명 이후, 상류사회
#1 프랑스에서 살다 온 시인이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이 설마 밥을 표현하는 영단어를 모를 리 없을 터라 눈을 껌벅이며 질문의 의도를 헤아렸다. ‘밥’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우리가 먹는 밥’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세 번쯤 껌벅껌벅 하고 나서 대답했다. “글쎄요.” “그렇죠?” 하고 그가 동감을 표했다. 이게 무슨 대화지? 하고 또 눈을 껌벅껌벅했다. “푸드(Food)나 밀(Meal)은 우리의 밥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라이스 푸드(Rice Food)? 보일드 라이스(Boiled Rice)? 다 이상하잖아요. 아이구, 힘들어 죽겠네. 뭐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별게 다 죽을 일이네, 하고 뜨악해 하다가 문득 시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헤아리게 되었다. 듣자니 한국의 음식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밥’을 설명하기가 힘들었나 보다. 김치, 고추장, 불고기, 비빔밥 등등의 음식은 설명하기 어렵지 않은데, 정작 중요한 밥이 난감했다고 한다. “밥은 밥이죠 뭐. bob, 이상한가? 이상하군요.” “그렇죠?” 외국인들과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1 소는 어떻게 웃을까? → 우하하. 소가 한 마리면? → 소원. 소가 두 마리면? → 투우. 여러 마리면? → 소스. 소가 죽으면? → 다이소. 이런 식의 아재 개그가 유난히 많이 날아왔다. 웃겼소? 재밌소? 그렇소. 그만하소… 2020년 기준 전 세계 소 사육두수는 10억 마리 정도다. 세계 인구 45억 명과 비교하면 그 수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다. 참고로 닭은 520억 마리, 오리는 25억 마리로 추산하고 있다. 소가 많은 나라 순위는 인도(3억 마리), 브라질(2.4억 마리)이 선두권이고 그 뒤를 미국, 중국, 아르헨티나가 잇는다. 대체로 인구 수와 비례하는 듯하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인도는 소를 신성시하는 나라라 소의 도축을 하지 않는다. 소 입장에서는 가장 조국을 잘 만났으니, 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의 소들은 정 반대다. 그곳 사람들이 워낙 소고기를 좋아해서 소를 많이 기르는 것이다. 조국을 잘못 만난 소들이다. #2 소 입장에서 계속 이야기하면, 힘에서 코끼리에 뒤지지 않고 아이큐와 감정 지수에서도 고등 동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최선을 다하고 가는 동물이 소다. 실제로
#1 전쟁이 일어났다, 는 소식이 들렸다. 국지전인지, 전면전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큰 전쟁은 아니겠지. 잠시 일어난 충돌이고 곧 잠잠해지겠지.) 멀리서 간간이 포성이 들렸다. 대포인지, 미사일인지, 연습용인지, 실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실제 상황이라도, 우리 군대가 잘 막아내겠지.) 포성이 점점 커졌다. 총소리도 들려왔다. (점점 심각해지는 듯. 제발 우리 동네는 무사하기를.) 옆 동네가 포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다. (최대한 웅크리며, 제발 우리 집에는 총탄이 날아오지 않기를.) 옆집에 총탄이 날아왔다. (피하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주민들도 그랬을 것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누구와 싸우고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도 모른 채, 닥쳐오는 무엇인가를 막연히 맞이할 수밖에. 그것이 매우 위험하고 괴기스러운 것임을 깨우친 것은 눈앞에서 가까운 사람의 희생을 목격한 뒤가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요즘 심경이 이와 흡사하다. 점점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 전쟁은 적군의
#1 며칠 전 아침 방송에 코로나 치료제 관련 바이오 회사 대표가 나왔다. 머잖아 백신 상용화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고, 이런 의약품은 공공재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인터뷰 말미에 그의 개인사가 짧게 언급되었다(40대에 5천만 원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흙수저 출신인 그가 주식 부자 1위가 된 배경). 방송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과 함께 희미해져 간 대화를 추려 담으면 이런 내용이다.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인들과 일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뛰어난 점은 많지만 특히 우리란 말에 익숙해요. 우리 회사라는 개념을 갖고 일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있지요.” 그의 이 말은 어떤 언론에서도 주목하지 않았다. 코로나 치료제의 개발 상황, 물량과 가격과 출시 시점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이해한다. 뭐, 듣는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초점이 다르니까. #2 여전히 시골에 남아 있기를 고집하는 노모를 뵈러 갔다가 친구와 이런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고향 왔으면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지, 우리가 이래도 되는 거야?” “미안. 당장 우리 집으로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