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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사랑방 손님과 여름

-방마다 쌓이는 사연


#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단편소설이라 웬만하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내가 처음 그 소설을 읽었을 때, 왜 교과서에 실렸는지 다소 의아했었다. 사랑인 듯 사랑 아닌 듯, 슬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쨌거나 좋은 작품이니까 교과서에 실렸겠지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왜 사랑방이지? 사랑방이 사랑의 방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사랑방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뒷방이나 건넌방이나 곁방과는 느낌이 달랐다. 작가도 그런 언어 이미지를 활용한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사고방식으로 보면 꼬마의 어머니나 사랑방에 묵었던 손님이나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밀당을 하는 방식도 답답하고, 어린아이를 메신저로 이용하는 수작도 왠지 비겁한 느낌을 준다. 이 소설의 독후감을 다소 삐딱하게 쓴다면,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꼬마가 소문내는 작품이라 하겠다.


#2
시대를 건너뛰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때는 이해가 되고 자연스러웠던 행동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황당하고 당황스럽게 바뀌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겪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섯 살짜리 꼬마 옥희가 아니라 어머니다. 그녀는 과부(이 자연스런 단어도 요즘은 왠지 불경스럽게 들린다)다. 그런데 나이가 몇인 줄 아는가? 이번에 다시 읽으며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방년 24세다. 스물넷 여자가 여섯 살짜리 딸을 두었으니 결혼은 18세 무렵에 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때는 그랬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시대상을 알려주는 것도 소설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넷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나이에 한 가정의 살림을 꾸리고 머잖아 딸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사랑이 뭔지 알까 싶은 여자를 두근거리게 하는 젊은 남자가 등장하지만 차마 진도가 나가지 못한다. 밀당을 하던 남자가 떠난 뒤 사랑방은 어떻게 됐을까. 또 다른 손님으로 채워졌는지, 또 다른 사랑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


#3
시골의 집에는 방이 많았다. 가난한 집도 방이 두 개는 있었다. 안방, 건넌방, 사랑방, 뒷방, 쪽방 등등이 있다고 해서 큰 부자는 아니었다. 그 방들에 다 임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들의 용도는 대체로 이랬다.


안방은 주인의 방이다. 안방 옆의 곁방은 아이들의 방이고, 또 다른 방이 마루 건너에 있다면 건넌방이라 불렀다. 뒷방이나 쪽방이 별채나 본채 뒤쪽에 있기도 했다. 일하는 사람이나 손님의 거처로 썼다. 아이들이 크면 끼리끼리 모여 노닥거리는 방이 되기도 했다. 헛간도 일종의 방 역할을 했다. 구세주도 여기에서 태어났다니 나름 중요한 방이다.


사랑방은 그런 방들과 조금 다르다. 뒷방노인이 되기 전의 어른이 사용하거나, 주인이 손님을 맞을 때 사용하거나, 귀한 손님이 묵는 방이기도 했다. 사랑방 손님은 뒷방 손님과 전혀 달랐다는 얘기다. 


뜨거운 여름, 사랑방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고 싶은 날이다. 코로나니 뭐니, 경제니 뭐니, 하다못해 사랑이니 뭐니까지 귀찮은 날들이 가끔 혹은 자주 있다. 딱 그런 날인데… 요즘은 사랑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