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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인디언에게 배우기

-사고 팔 수 없는 것이 있다


#1
전쟁이 일어났다, 는 소식이 들렸다. 국지전인지, 전면전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큰 전쟁은 아니겠지. 잠시 일어난 충돌이고 곧 잠잠해지겠지.)


멀리서 간간이 포성이 들렸다. 대포인지, 미사일인지, 연습용인지, 실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실제 상황이라도, 우리 군대가 잘 막아내겠지.)


포성이 점점 커졌다. 총소리도 들려왔다.
(점점 심각해지는 듯. 제발 우리 동네는 무사하기를.)


옆 동네가 포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다.
(최대한 웅크리며, 제발 우리 집에는 총탄이 날아오지 않기를.)


옆집에 총탄이 날아왔다.
(피하려고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주민들도 그랬을 것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누구와 싸우고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도 모른 채, 닥쳐오는 무엇인가를 막연히 맞이할 수밖에. 그것이 매우 위험하고 괴기스러운 것임을 깨우친 것은 눈앞에서 가까운 사람의 희생을 목격한 뒤가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요즘 심경이 이와 흡사하다. 점점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 전쟁은 적군의 형체가 있지만 이놈의 바이러스는 형체도 없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촉감도 없다.


#2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그랬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본 하얀 피부의 사람들에게 살 자리를 내주고 도움을 준 이유는, 어찌됐든 사람이고 생각할 줄 아는 생명들이기 때문이었다. 오랜 항해에 지치고 병들고 연약해진 백인들을 도와주고 보살펴 준 결과, 그들은 인디언들을 공격하고 밀어내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았다. 최대한 점잖게 ‘땅을 팔라’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인디언들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시애틀 시의 어원이 된 수과머쉬 족 추장 시애틀(원래 이름은 시앨트, 1786~1866))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되기 전, 백인 집행관에게 한 연설을 소개한다.


“워싱턴의 얼굴 흰 대추장이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의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이 제안을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족은 물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사고인지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들의 방식과 다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일어난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게 해야 한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 ‌아메리카 인디언 연설문 중 가장 유명하며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 일부(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