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누구나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복잡한 과학적 기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식물은 한 곳에 고착해 광합성 활동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동물은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먹이를 섭취한다.
식물과 작물의 차이는 더 간단하다. 식물은 자연 생태계 속에서 고착 생활을 하는 생명체 전반을 말하고 작물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재배하는 식물들이다.
지구의 생태 순환 원리에 맞게 제각각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교배 방법으로 후손들을 퍼뜨려 왔다. 하지만 작물은 그들과 근본이 다르다. 사람에 의해 키워지고, 사람을 위해 열매를 맺는, 인위적 노력의 산물이다.
#2
지구 최초의 작물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밀이다. 조금 넓게 잡으면 밀, 보리, 콩 등의 곡물들이다. 수렵과 채집으로 자연 생태에 따라 생존하던 동물적 인간들이 한 곳에 정착해 집단생활을 하면서 문명이 시작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곡물을 인위적으로 양산하는 것이 필요조건이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밀이었다는 주장은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밀 재배지였다는 점에서도 일리가 있다.
독일의 생태학자 한스외르크 퀴스터는 <곡물의 역사>에서 ‘최초의 경작지부터 현대의 슈퍼마켓까지’ 역사를 정리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결국 곡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곡물에 모든 것이 달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다."
#3
최초의 작물은 과연 밀일까. 쌀이 밀보다 훨씬 뒤에 재배된 작물이라고 믿는 근거는 많다. 밀보다 복잡한 재배방법, 논이 밭보다 후에 등장한 경작지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된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종종 등장한다.
1990년대 후반 청주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가 1만2500~1만5000년 전 무렵의 재배용 볍씨라는 주장이 나왔고(충북대 박물관,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그 타당성에 대한 과학적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다. 최초의 밀 재배 시기를 1만 년 내외로 잡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초의 작물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재배한 작물은 무화과라는 주장도 있다. 하버드대의 오퍼 바르-요세프 교수 연구진이 사이언스 최근호에 발표했는데 그 시기를 1만1400년 전이라고 주장했다. 무화과는 “단위결실(씨없는 열매) 돌연변이가 일어난 다음에는 열매에서 새로운 나무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무화과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라 추정했다.
#4
최초의 작물이 밀이든, 쌀이든, 무화과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1만 년 전 혹은 그 이전 어느 시기, 누군가가 그것을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인간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람이 식물의 나고 자람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한 첫 번째 인간은 누구였을까. 인류사 최초의 벤처인이자 가장 위대한 발명가가 분명한데 그가 거대한 부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부의 개념이 없고 부가 중요하지도 않았을 시대, 첫 수확을 하여 손바닥 위에 놓인 결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신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신(神)의 파자가 禾+申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유민 |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