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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봄날은 왔다

-날마다 잊는 시절


어젯밤 10시 무렵 동료들과 헤어져 지하철로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 출근길처럼 붐비는 전철 안에서 내내 서서 귀가해야 했다. 외식업체 영업이 10시까지 허용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귀가 길에 오른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기야 9시 마감이던 시절에는 10시 넘어 퇴근할 때의 거리가 너무도 한산해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방금 전 술을 같이 마시던 동료들도 요즘 생활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몇 가지 대표적인 논조를 옮겨 보자.
“바깥 생활이 확 줄어들어서 살만 찌고 있어.”


“회식 없고 술자리 줄고… 나는 오히려 건강을 챙기는 계기가 된 것 같은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이렇게 많아보긴 평생 처음이네.”


“그래서 좋은가? 난 핀잔 듣는 시간이 늘었고 머잖아 쫓겨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투의 대화를 잇다가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고 자리를 파한 차였다.
환경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생활의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제각각 다른 셈이다. 


한 사람은 지난해 은퇴했고, 한 사람은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으며, 한 친구는 진즉 계획을 잡아 시골에서 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순서대로 그들의 일상을 들었다.


“나는 매일 뒷산에 오르네. 본격 등산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아주 좋아.” “나는 아직 계획이 없으이. 휴일에도 뭘 해야 할지 몰라 TV 켜놓고 빈둥거리지.”


“농사지을 밭떼기를 준비는 해놨는데 좀 봐야겠어. 천천히 시작해야지.”


모두가 여유로운 듯 보이면서 어딘지 허전한 느낌도 들었다. 이유가 뭘까.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동안 약간의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 모두 (큰 부를 축적하진 못했어도) 그런대로 노후 기반을 갖추었고, 이제 와 새로운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활동에서 벗어난 허허로움을 (본인도 모르게) 안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투명한 내일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으리라.


쫓기듯 자리에서 일어설 때 은퇴자가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택시 잡기도 힘들어져. 통행금지나 다름없지?”
“옛날 통행금지는 12시였잖아. 그때는 여관업이 참 잘됐지.”
“그 통행금지 시절에는 낭만이 있었지. 지금은 통행불가 시대야. 몸도 마음도 서로 통하지 않는 시대.”
“그런데 그때는 왜 통행금지가 있었지?”


“요즘의 9시, 10시 영업마감, 이런 것들도 한참 세월이 지나면 왜 그랬는지 다 까먹는 것 아냐?”
“한참 세월은 무슨, 며칠만 지나도 까먹고 까먹고 그러면 살잖아 요즘.”
“그러다 완전 까먹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
“그날이 와도 계속 살아있을까.”


2021년 어느 봄밤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