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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어떤 아버지의 돈 쓰는 법

-Bravo My Life


제법 잘 사는 집안의 친구에게서 부음 소식이 왔다. 요즘 문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져 그야말로 간단하게 인사치레를 했고, 한 달쯤 지나 위로주를 나눴다. 그날의 대화다.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셨다.”
“그야 뭐, 우리가 다 알고 있지.”


고가의 집은 정평이 나 있었고, 해외여행을 즐기셨는데 늘 1등석만 타신다는 부친이었다. 유산도 꽤 되리라는 짐작이 들었고, 그로 인해 형제간 불화는 없었나 염려도 되었다. 친구가 답했다.


“장례 치르고 재산 정리를 하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귀 쫑긋. 이런 호기심은 본능이다).
“마이너스 500을 남겼더라구.”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집값만 해도 얼마이며, 아버지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놀란 토끼가 된 내게 친구가 웃으며 털어놓았다.


“자식들한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을 테고, 아무 신세도 지지 않겠다고 말씀은 하셨었지. 홀로 되신 뒤로(그의 모친은 부친보다 10여 년 먼저 떠나셨다) 별 수입이 없으니 집을 담보로 끝없이 대출을 받아 썼더라고. 그리고 재산이 마이너스로 넘어가자 돌아가신 거지.”


부의금까지 정리하면 그야말로 ‘똔똔’으로 마감한 인생.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 축하한다고 말할 뻔, 했다.
“아버님, 대단하시네. 멋지다.”


요즘 현역에서 은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두 가지 부류로 느껴진다.
한 부류는 불안과 고독에 시달리는 이들이고, 한 부류는 여유를 찾는 이들이다. 그 기준이 자금력이 아니라는 게 흥미롭다. 친구가 말했다.


“사실 우리 주변에 아파트 빼먹고 사는 사람들 많아.”
아파트 빼먹고 산다는 말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을 말한다. 강남권 집 부자들도 겉만 멀쩡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식 결혼 때 조금이라도 보태주려고 대출을 받고, 다음에는 무엇인가 돈 들어갈 일이 생겨 더 받고, 다음에는 어차피 세금으로 떼이느니 생활이나 여유롭게 하자는 생각으로 대출을 받고… 겉만 부자인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불만과 불안, 고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인생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 멋진 아버지가 특별한 것도 아닌 것이다. 진정 특별하다면, 거리낌없이 나머지 인생을 자신에게 썼다는 것, 그 멋이다. 

 

(속은 모르지만 겉으로나마) 여유를 찾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그들 대부분은 시골로 떠난, 귀농한 이들이다. 요즘의 귀농인들은 ‘농사나 짓자’족이 아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농사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최선의 미래를 위해 선택하는 ‘할일’이다.


할아버지가 된 지 7년쯤 된 선배의 경험담이다.
“처음에는 내 잡(job)이 없어져서, 다음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서, 다음에는 가족들마저 기피하는 것 같아서, 점점 더 고독 속으로 빠져들었지. 하다못해 손주까지도 ‘할아버지 나 바빠서 통화 오래 못해요’하고 끊을 정도로 대화할 사람이 줄어들었으니까. 그것을 이기는 힘이 어디에 있느냐. 결국 시골이야. 풀, 나무, 꽃, 물, 빛, 바람… 새록새록 다시 보게 되는 기쁨을 어디에서 얻겠어. 은퇴를 하면 시골로 가야 해. 농사를 짓든, 있는 돈 까먹든, 어떻게든 농촌에는 살길이 있는 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