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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저지르는 사람들

-즐거움 찾기 방식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즐거운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섹스는 그 많지 않은 즐거움 중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죠. 그걸 자꾸 불경하다고 압박하고 죄를 짓는 양 생각하니까 병이 생기는 겁니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에 나오는 대화다. 즐거운 일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 한 되도록 많이 과감하게 하며 살라는 조언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궁금해졌다.

 

‘내 삶의 즐거움’들은 무엇일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중구난방 헤매다 보니 영화가 끝났다. 한 가지 희미하게 떠오른 것이 있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수록 즐거운 일이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즐거운 일들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즐거운 것들을 많이 찾는 이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만나는 이들에게 툭툭 질문을 던져봤다. 나이 들면서 더 즐거워진 것이 있던가요?

 
“즐거운 걸 찾으면 엄청 많지.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 상상해도 즐겁지 않아?”
“내일 일을 걱정하다 보면 끝이 없으니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지. 오늘 일 끝내고 운동할 생각을 하는 것으로도 즐거운데?”


“새로운 취미활동을 시작하니 거기 빠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어렸을 때는 억지로 했는데 지금은 내가 선택해서 즐기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즐겁지.”


흠흠, 다소 맥이 빠졌다. 많이 들어 본 교훈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흥미를 유발하는 얘기를 들었다.
“마구 저지르는 게 즐거워요. 핫핫.”
“뭘 저질러요?”
“뭐 그냥, 좋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저지르는 거죠. 어렸을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을 막 저지르다 보니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든 상관없이 나에게 주도하는 재미를 줘요.”


그는 이 회사 저 회사 옮겨다니며 많은 히트상품을 개발한 능력자다. 능력이 출중하니 나이 들어서도 즐겁게 살 수 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말했다. 부럽습니다.


그가 답했다.
“하, 그게 말이죠. 만들어진 허상예요. 제가 정말 히트상품 제조기라면 즐거울 리가 있겠어요? 강박증에 시달리며 전전긍긍하며 살겠죠. 사실은 실패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런 와중에 몇 개, 고작 두세 개? 그게 알려지면서 손 대는 것마다 성공한다고 소문이 난 거죠. 사람들은 성공한 것만 기억하니까, 핫핫.”

그러며 고백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단 저지르고 봅니다. 통계니 뭐니 분석하고 경제성이니 과학적 근거니 이런 거는 보고를 위해 갖다 붙이고요. 그렇게 저지르며 살다 보니 경험이 쌓이고 분별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게 경륜이 되리라고 지금은 확신하고 있어요. 나이 들수록 더 저지르자, 이게 제 가치관입니다. 핫핫.”


그의 말보다 호쾌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 흥미 만점이었다. 덩달아 따라 웃게 하는 힘이 있었고 그것이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우리 한번 같이 저질러 봅시다. 핫핫.”

연말이 다가오면 정리할 것들이 많다. 정리하다 보면 답답해지기 일쑤인데, 아마도 저지른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