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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에세이] 동그란 걸 못 먹는 사람

동그란 것을 못 먹는 후배가 있다. 사과, , 방울토마토, 앵두, 살구이 친구는 세상의 열매들이 얄밉기만 하다. 열매들은, 특히 과일들은 왜 모두 동그랗단 말인가. 하지만 이 세상의 열매들만 그런가. 사탕도, 과자도, 떡이나 빵 중에도 동그란 것은 수없이 많다.

다행히 그는 사과, , 방울토마토, 포도, 베리, 사탕, 초코볼들을 동그랗지 않게 잘라 놓으면 먹을 수 있다. 동그랗지 않으니까. 이해가 되는가? 특정 식재료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은 종종 보지만 특정 모양에 대한 공포 심리는 접하기 힘드니 이해가 가기 어렵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느 날 이유를 들어 보았다. 후배의 까마득한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 자매가 구슬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언니가 호기심이 발동해 동그란 구슬 하나를 동생의 코에 넣었다. 구슬이 콧속에 들어간 게 재미있어 더 깊이 밀어 넣는다. 아뿔싸, 너무 깊이 들어간 구슬이 이번엔 빠져나오지 않는다. 언니도 동생도 당황한다. 구슬을 빼내려 한쪽 코를 막고 안간힘을 써도 어떻게 처박혔는지 이놈의 구슬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더럭 겁이 난다. 자매는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한테 혼날 것도 겁나고 이놈의 구슬이 영영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가 밀려온다.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도 눈앞의 현실을 이해하려 애쓰며 아이의 콧속에서 구슬을 빼내려 한다. 하지만 엄마도 속수무책이다. 세 모녀가 공포에 질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도 이 해괴한 상황 앞에서 한동안 방법을 찾지 못한다.

 

여기까지가 후배의 기억이다. 병원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했으니 학교도 다니고 성인도 되고 직장도 다녔을 것. 당사자는 그 공포의 과정은 뚜렷이 기억하지만 해결 과정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이후 동그란 것만 봐도 소름이 끼치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그란 걸 못 먹는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동그란 걸 기피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해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듣고도 재밌는 옛이야기 들은 듯 웃어넘긴다. 당사자는 이제 그 설명조차도 지겹다.

사람들이 자기 가족에 대해 전폭적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핏줄이니까, 같이 살아온 세월과 함께 깊은 정이 들어서, 이유는 오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오만 가지 중에는 이 있다. 남들은 모르는 배경을 가족이 알기 때문에 이해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이고, 한국인이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그들끼리, 우리끼리,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데는 오만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으기 좋아하는 일본인에게,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할 이유는 없다.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모으기 좋아하는 일본인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가족이 아니고 한 민족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해하려 애쓸 이유도 없다.

하지만 폭력은 다르다. 동그란 걸 못 먹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도 폭력이고, 동그란 걸 못 먹는 사람에게 굳이 동그란 것만 내놓는 심술도 폭력이다. 심술을 넘어 폭력과 자해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이웃 나라의 미래가 자못 염려스러워 이런 궁금증이 생기는 요즘이다. 도대체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글은 다음 브런치(https://brunch.co.kr/@popo3322/11)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