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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왼손잡이 앞에서 반성하다

사피엔스에서 더 진화한 사람들

며칠 전 식사를 하다가 문득 놀랐다. 다 왼손잡이인데 나만 오른손잡이인 것이다. 두 사람은 식사와 글씨 쓰기를 모두 왼손으로 하였고, 다른 두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을 겸용해서 그때그때 편한 손을 쓰는 양손잡이였다. 즉, 원래는 왼손잡이인데 오른손 쓰는 연습을 열심히 해 양 손이 자유로워진 이들이다.


오른손잡이들 속에 왼손잡이가 가끔 섞이는 일은 있지만 왼손잡이들 속에 오른손잡이가 외로이 섞여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서로서로 놀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이 대화의 주제가 됐다.

 

“왼손을 쓰는 게 훨씬 편한데 부모님이 하도 혼내서 밥먹을 때와 글 쓸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게 됐어요.”


“나도 학교에서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요. 집에서는 상관하지 않았는데 학교 선생님이 자꾸 병신 취급을 해서 기분 상한 적이 많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아무 불편이 없었어요.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는데 오른손잡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팔이 부딪히는 게 불편해졌죠. 그때부터 앉는 자리에 신경을 쓰게 되고 하다가 점점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됐답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왼손을 더 잘 쓰는 게 무슨 범죄도 아니고 누굴 해치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난리였을까요? 왼손을 자주 쓰면 머리가 나빠져? 건강이 나빠져?”


제각각 손 때문에 겪은 사연들을 늘어놓는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든 구세대일수록 왼손잡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고 할 말도 많았다. 그 자리의 비정상인인 오른손잡이는, 아무 생각 없이 오른손잡이로 산 것이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사과의 뜻을 담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난 왼손잡이들은 대부분 재주가 남달랐어요. 손에 대한 고민이 남들보다 많았으니 하나라도 더 노력했을 테고, 한편으로는 양손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이들이 왼손잡이에게 더 많은 걸 봐도 오른손잡이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인류 아닐까요? 사피엔스에서 더 진화한 레프트 사피엔스?”


왼손잡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의기양양, 양손잡이가 한술 더 보탰다.


“우리나라가 맨날 이쪽 저쪽 편가르고 싸우는 것도 다 오른손잡이 중심이라서 그래요. 왼손잡이나 양손잡이들이 늘어나면 한결 평화롭고 조화 있는 사회가 될 겁니다.”

 

이상한 논리였지만 그 자리에서는 매우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른손잡이로 산 것을 반성하며 열심히 노력해 양손잡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반면, 흔히 일어나기 힘든 일을 겪으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연속되는 것을 가리켜 ‘일상’이라 하고, 흔히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남을 가리켜 ‘일탈’이라 한다. 말하자면 오른손잡이임을 인식조차 못하고 살던 ‘일상’인이 어느 날 ‘일탈’의 맛을 본 뒤 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것이랄까.

피천득 선생은 수필을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왼손잡이가 파격이란 말은 물론 아니다. 파격을 허용하지 않는, 똑같음을 강요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를 찾은 듯해서 떠오른 정의다. 아, 피천득 선생은 돌아가실 때도 천진한 미소를 띠고 눈을 감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파격적으로. 

 

* 이 글은 다음 브런치(https://brunch.co.kr/@popo3322/11)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