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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에세이] 제5의 인연에 대하여

혈연-지연-학연-직연… 다음은?

새롭게 알게 된 술집 중 괜찮다싶은 두 집이 있다. 한 곳은 가라오케이고 한 곳은 옛날식 (막걸리풍) 주점이다. 두 집의 공통점을 꼽자면고객이 중~노년층이라는 것이다.

술집은 자고로 우리끼리 즐겁고 편안하면 되지 다른 고객들과 소통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 집들에서는 이상하게 옆 테이블, 옆옆 테이블의 고객들과 자꾸 대화가 연결되곤 했다. 어제도 그랬다. 옆옆 테이블의 중년 남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이런 대화가 시작됐다.

 

누군가에게 청탁을 하나 받았다고 칩시다. 대단한 건은 아니지만 입장에 따라서는 긴요한 건이겠죠. 그럴 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주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혈연, 지연, 학연, 직연(직장 인연)들 중 어느 쪽 것을 잘 들어줄까요?”

대답은 당연히 중구난방이다.

누가 뭐라 해도 혈연이 제일 중하지 않은가요?”

요즘 같은 시대에 혈연이 뭐가 중한가, 지금은 학연 시대 아니오?”

학연도 물 건너갔어요, 괜한 오해받기 십상이죠. 반면에 직연은 나름대로 전문업종끼리의 관계니까 그게 우선 아녜요?”

물론 그 와중에도 청탁을 왜 합니까?” 하고 독야청청 술이나 마시는 이도 있긴 하다.

 

골치 아픈 화두를 던진 남자가 말했다.

조금이라도 투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앞의 4대 인연들을 찜찜해 합니다. 그런데 동호회원이나 술집 말동무, 동료의 친구의 친구 같은 관계는 부담이 덜해요. 그런 이들은 무리한 부탁을 안 하게 되고 들어주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한결 편하죠.”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그런 관계는 어떤 인연인가. 이른바 5의 인연이라고, 화두를 던진 이가 알려 주었다. 스스로의 뜻과 무관하게 엮여져 있던 ‘4대 인연과 달리, 개인적 취향과 선택에 의해 새롭게 맺은 인연이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자기 스스로 주도한 관계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4대 인연에 얽혀 주고받는 부탁(내지 청탁)은 왠지 부정직하고 찜찜한 느낌이 들지만 제5의 인연은 훨씬 개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확장적이고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 우리는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자리에서 5의 인연을 맺어야 했고, 그것을 기념하며 건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청탁도 하나 해버렸다.

 

요즘의 인맥은 과거와 개념이 달라졌다. 과거 인맥은 혈연과 지연, 학연 중심이었지만 이제 그 연줄이 서서히 분화되어 코드, 취향, 공감의 연줄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4대 인연과 차원이 다르고, 색깔도 다른 후천성 의지의 인연들이다. 그렇다고 마구 부탁하고 청탁하라는 얘기가 아님을 굳이 알려야 하는지잘 모르겠다. , 이렇게까지 자기 검열을 해야 하다니.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