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발전은 고도의 기술이 집적된 영농기자재의 개발과 사용, 관련된 경영의 개선, 혁신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과서적인 정의가 현장에서는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말은 하면서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 있거나, 행동은 하지만 일시적인 반응 정도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발의한 「필수농자재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속절없이 폐기되는 것을 보는 소감이다.
갈수록 농업생산에서 기술·자본재인 영농기자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을 기준으로 우리 농업의 총수입은 약 35조 4000억원이다. 농가 호당 농업경영비가 2511만9000원이며, 이 가운데 영농기자재 성격의 비용은 1888만9000원(경영비의 75.2%)에 이른다. 이를 기준으로 영농기자재의 구입규모를 추정하면 연간 무려 19조 2000억원에 이른다. 이것의 1/3을 줄여서 산정하더라도 약 13조원어치의 영농기자재가 매년 농업생산에 투입되고 있다.
오랫동안 영농기자재의 불안정적인 가격변동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2023년 이후에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에 대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충남 공주시는 2023년 10월 처음으로 「공주시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를 제정하였다. “필수농자재 가격 폭등으로 농업생산 위기에 직면한 농업인에게 생산단계에서 필수농자재 구입비용을 지원함으로써 기후위기시대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농업인의 생산활동을 보장하며 농가 소득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로는 전라북도에서 2023년 12월에 「전라북도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합당한 현장에서의 필요성 제기와 법제화에 발맞춰 국회는 2024년 8월에 「필수농자재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제안 이유의 일부를 보면 첫째 “기후변화 및 불안한 국제정세에 따른 농자재 및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농업인들의 농가 경영비용에 대한 부담이 심화하고 있”으니 이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 둘째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농자재 일부에 대한 지원 조례 제정으로 제한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정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으니 이의 기초를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현재 개별 영농기자재에 관련하여서는 각각의 개별법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농업기계화촉진법」, 「농약관리법」, 「비료관리법」,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스마트농업법)」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의 입법발의는 개별 영농기자재 관계법령의 상위 법을 제정하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국회 입법발의 목적이, 급변하는 농업의 경영여건을 반영하고, 현장에서의 필요성이 발현되고 있으니 중앙정부, 즉 국가차원에서 기본법을 마련하여 지원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국회에서 재발의한 「필수농자재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정부에서 또 거부하였다. 농업4법의 거부에 대한 변(辯)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면 걱정이며, 유감스러울 뿐이다. 농망(農亡)을 누가 하고 있는지,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지. 우려가 많다. 물론 발의 법의 일부 내용에 대해 이견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정, 개선해 나가면 된다.
흔히 정책발굴과 평가에서 나무의 열매만을 보는 자세는 경계되어야 한다. 나무의 뿌리와 지탱의 근본인 땅, 그 기본적인 상황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와 대응방안 마련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농업 현장에서의 요구를 반영한 지방정부의 영농기자재에 대한 지원제도화를 오히려 중앙정부에서 거부한다면 뭔가 거꾸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 스마트농업을 위해 종합적인 영농기자재 지원법이 필요하다. 스마트영농에서 첨단시설과 장비를 필요로 하며, 유기농업에서도 바이오 영농기자재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영농기자재와 함께 이들 모두를 총괄하는 영농기자재 최상위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약칭: 농업식품기본법)」과 같은 성격의 법을 영농기자재에도 적용해서 “스마트영농기자재 지원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혼란이 야기되기 전에 필요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