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협 계통농약 가격이 평균 0.5% 인상된 가운데 계통농약 정기신청(2월 3일 마감)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실상 가격 동결과 진배없는 농협의 2025년도 사업분 계통농약 가격 결정을 두고 농약제조업계는 ‘계통 무용론’까지 제기하며 정기신청 기간 내내 침통함을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도 농협 계통농약 가격의 단순 인상률만 보면 강보합세라 할 수 있겠지만 그리 보는 시각은 없는 듯하다. 현실적 제반 인상 요인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가격 결정으로 심리적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하며 난감해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실살 동결을 염두에 둔 농협경제지주와 최소 3% 전후의 인상을 기대했던 농약 제조업계 간 샅바 싸움은 치열한 듯 보였지만 승부는 농협경제지주의 싱거운 승리로 끝난 셈이다.
제반 인상 요인을 앞세워 최초 5% 인상안을 제시한 산업계는 완강한 농협경제지주의 입장에 밀려 3% 미만 인상 입장으로 선회하는 등 나름의 전략으로 정밀한 시담을 이어갔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결급 인상안을 받아들고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꺼림칙한 새해를 맞게 됐다고 아우성이다.
허나 승부는 병가의 상사다. 다른 승전보를 기대하며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의외의 성과가 다가올 것이다. 과거 오랜기간 동안 동결 내지 인하로 일관해 온 농협 계통 농약 가격 추이를 감안하면 최근 수년 동안의 동향은 어쩌면 산업계 체감과는 다르겠지만 격세지감이자 모호한 감지덕지 일수도 있는 외형이다.
그럼에도 돌이켜 보면, 지난 2023년도 12.5%의 큰 폭의 인상률이 독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일각의 자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1%의 소폭 인상과 올해 0.5%의 동결급 인상 명분을 제공하는 단초였는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대두되면서부터다.
농협, 시판, 농업인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인상률에 대처하는 방식이 같지 않은데다 인상률에 따른 당해 소비와 성장이 인상률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표]
농약 가격(농협 계통납품가 기준) 인상률이 평균 12.5%에 달했음에도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으로 기록된 2023년 실적을 보자. 출하량은 2만402톤으로 전년도 1만9882톤 보다 2.6% 증가하였다. 매출액은 1조9559억원으로 전년도 1조8323억원 보다 6.7% 증가하는데 그쳐 당해 가격 인상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사상 최초 매출액 2조 원 시대를 쉽게 열 것이라는 예상이 보란 듯 깨진 결과다.
전년도 하반기 농약 원·부자재 가격 급등과 심한 환율 변동성 등으로 일찍이 예견된 당해연도 사업분 농약가격 인상이 유통(농협·시판)업계의 선구매(조기구매)로 이어지면서 시장의 매출 증가세 둔화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됐다.
설상가상으로 1~3월에 이어진 병해충 발생 저조와 봄가뭄, 4월 발생한 냉해 피해 등의 기상 여건 악화가 상반기 매출 성장동력을 크게 떨어트렸고 특히, 중·후반기에 접어들면서는 장마와 잦은 폭우 피해까지 겹쳐 농가들이 비교적 저가 약제 위주의 구매·방제 패턴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고가 약제의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등이 추가 이유로 알려졌다.
반면, 농약 가격 인상률이 4.5%에 달했던 2022년 시장 성장률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기에 충분했다. 농약 출하량이 1만9882톤으로 전년도 1만9014톤보다 4.6%가 증가해 가격 인상률과 같은 의외성을 보였지만 매출액은 1조 8323억원으로 전년도 1조6076억원보다 무려 14.0%가 증가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당시 업계는 당해 가격 인상률이 농약 원제 가격의 폭등세와 수급 불안정, 유가, 물류비, 환율 인상, 특히 300%에 가까운 천정부지로 치솟은 비선택성 제초제 가격 등 농약 가격 인상 요인들을 감안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반발했지만, 최소한의 손실 보전을 위한 마지노선임을 강조,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인상률을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당시 농협중앙회 역시 계통가격 인상의 불가피성에 공감하고 시담에 앞서 인상률을 산출, 반영하는 등 가격 인상 결정에 긍정적이었던 것이 당해의 인상률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2024년에는 농협경제지주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계통농약 가격을 크게 인상한 상황에서 2024년까지 가격을 올리기에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회원농협을 비롯한 농약 유통 주체들의 반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3~5% 인상을 주장한 업계와 가격 안정화에 주력한 양측의 줄다리기는 역시 약간의 수수료 인상 등의 조건을 부여받은 채 1% 인상이라는 어두운 성적표를 받아든 농약제조업계의 판정패로 막을 내렸다.
상호 이해 제고 통한 명분·실리 얻어야
연말 시장 성적표는 더 초라했다. 전년도 재고 과다와 이상기온에 따른 농작물 작황 부진 등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지만, 무엇보다 일부 회사들이 이루어낸 최근 몇 년 동안의 ‘특가(현금할인) 판매’ 방식 매출 목표치 달성분이 누적되어 시장의 악순환을 가중시켰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더했다. 특가판매 실시 여부가 회사별 매출 달성의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올해 상반기로 예상되는 작물보호협회측의 최종 집계표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2024년 11월 말 기준 주요 8개 농약회사의 매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0.3%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1.0%의 농약 가격 인상률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약보합세의 부진한 성적표다.
농약 제조업계의 바람과 달리 2025년 올해 역시 농협경제지주의 시담 입장은 단호하며 그리 호의적이 아니었음은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농협경제지주 한 고위 관계자는 우선 “농약 가격구성에 버블(bubble)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을 몇 차례 반복했다. 이외에도 내부를 살펴보니 계통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오히려 더 높은 상태라든가, 마이너 품목만 많이 유통되게 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한다든가, 시판상만 더 좋은 여건을 구축해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격 안정을 이룰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는 대목으로 미루어 농약제조업계가 목표를 쉬이 이루기 어려운 지경임은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농약 제조업계는 앞으로 가격인상 필요성에 대한 농협경제지주 관계자의 이해 제고를 위한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환율급등 등의 원가 요소별 가격 인상 요인이 온전히 수용되지 못하는 등 2025년도의 동결급 가격 결정 배경이 비단 새로 부임한 강호동 회장의 완강한 지침에만 기인하지 않았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제반 배경이 무엇인지 편린들을 하나하나 뜯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대농업인 가격 안정화’라는 농협중앙회의 명분을 쉬이 이겨낼 논리는 솔직히 많지 않지만, 적정 가격 보장을 통한 ‘우수 농자재 개발 공급’ 이라는 농약 제조업계의 명분 역시 대농업인을 위한 명분으로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본다. 농협중앙회와 농약 제조업계가 지닌 명분이 상호 존중, 배려받을 수 있다면 더 용이한 협상을 통한 큰 행보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