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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대리점 ‘죽음의 경쟁’ 부추기는 농기계 가격표시제

“가격거품의 원인 제공자 ‘농협 최저가입찰’부터 먼저 손질해야”


농림축산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농기계를 생산ㆍ공급하고 있는 기업들, 농기계를 농민에게 판매하는 최전선인 대리점과 상인들도 적지 않은 당혹감을 내비친다. 농기계 가격표시제가 시장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명쾌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이행 당사자인 대리점 소통부족…“공감 어렵다”
“우린 을”…국내기업 대리점 주체적 가격결정 회의적


그렇다 보니 예상되는 문제의 최소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엄밀한 검토와 대응책 강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따라 ‘영농자재신문’은 5월25일자와 6월10일자에서 농기계 가격표시제의 법률적 문제의 소지와 농기계기업과 시장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심층보도를 이어왔다. 


이번호에서는 농업기계유통협동조합과 대동공업, 동양물산기업, 국제종합기계, LS엠트론 등 4개 회사 대리점협의회장, 외국계 농기계 대리점협의회장, 모 회사 도단위 농기계대리점 등과의 면담, 일반 대리점 2개소 현장방문 면담과 전화 인터뷰 등을 토대로 가격표시제의 실제 담당자인 농기계대리점들의 반응과 당면문제를 짚어 본다.


지난 호 법률적인 검토를 통해 밝혔듯이 현재 농식품부에서 권장소비자가격의 표시를 금하도록 할 법적 근거는 없다. 아울러 소비자가격을 반드시 표시하라는 법적 근거도 없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7월1일 시행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더 이상의 법률적인 판단을 보류한 채, 당장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될 경우 무엇이 문제인가를 밝히는데 취재의 포커스를 맞췄다. 또 제도 이행의 당사자가 될 대리점이 당면한 현실을 점검했음을 밝혀둔다. 


우선 대리점들은 농식품부의 가격표시제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었으며 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한 부분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시장경제에서 자율적인 경쟁은 자율적인 가격과 서비스에 의해 이뤄진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과 활용이 이뤄지며, 궁극적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만족도가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농기계가격을 하향 획일화해서 고정화한 후 표시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시 제제하겠다는 것은 시장경쟁의 유익한 면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농식품부에서 제시하는 가격거품과 가격인하의 문제는 가격을 표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농기계기업, 구체적으로 농기계기업과 농협의 최저가 입찰과정에서 나온 문제이다.


따라서 자율화에 역행되는 가격의 표시제는 본질적인 현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가격표시제를 시행한다면 대리점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겠지만 정부가 원하는 궁극적인 지향 목적인 농기계 가격 투명성 제고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대리점 임의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양분됐다. 외국계의 경우 가능하다고 했지만 국내 대리점의 경우 매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능하다는 입장은 농기계회사든 대리점이든 담합적으로 가격논의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반면 어렵다고 보는 부류는, 국내 농기계기업과 대리점의 지금까지의 관계를 볼 때 어떤 형태로든 회사에서 가격에 개입하려 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든지 경영에 불리한 조치를 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점과 농기계회사 간의 갈등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농기계회사와 대리점은 갑을관계의 경향이 농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써 일부 농기계회사에서는 현 권장소비자가격 대비 어느 정도를 하향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와 같이 전국을 표준화된 가격 하나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품 농기계를 판매할 때 중고농기계 인수, 부품과 일부 부속물 제공 등의 복잡한 판매 상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소비자가격 결정에 담합적인 요인이 있다면 제제될 것이다. 그러면 대리점들은 스스로 소비자가격을 결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판매 조건 각양각색…표시가격 실행 ‘난망’
또한 가격을 표시하더라도 그대로 판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판매할 수 있는 지역을 강제하게 되면 농민들의 불만이 분출할 수 있다. 아울러 주유소처럼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수시로 가격을 변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리점들은 지금도 권장소비자가격대로 판매하고 있지 않다. 끼워주기, 수리비 삭감, 중고인수 등의 다양한 조건에서 가격을 할인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관행은 사라지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현금 판매냐 자부담금을 지금 입급해 주느냐, 차후에 주느냐 등 여러 변수로 실질적인 소비자판매가격이 변동될 소지가 많다. 이것을 뒷받침하려면 수시로 가격표를 달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매번 이것을 신고하라고 요구한다면 현장에서 이행이 불가능할 것이다. 주유소처럼 언제든지 임의로 소비자가격의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이웃 농기계대리점에서 동일제품의 가격을 낮게 판매할 경우 이쪽도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농기계를 팔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가격이 수렴하게 될 것이며 이는 종국에 가서 농협에서 판매하는 소비자가격이 되고, 대리점은 경영을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각이다. 나아가 만약 지역적으로 제한된 판매영역을 풀어버리면 대리점 간 생사를 건 경쟁양상이 나타나고 이는 결국 회사에 부담으로, 농민에게는 사후봉사의 부실로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중고 인수와 신품 판매 격리시켜야 제도이행 가능  
가격표시제가 어느 정도 이행되려면 중고농기계의 판매가 신품판매와 유리돼 별도로 자동차처럼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소비자가격이 표시된다고 해도 중고농기계 인수가 끼어들면 실질적인 가격표시제 이행은 어렵다. 한 대리점 대표는 “융자규모를 줄인다고 하지만 소비자가격을 실질 거래 가격보다 높게 한 후 높은 융자를 받게 하고 그 과정에서 중고 농기계 가격을 형식적으로 높게 책정해서 나중에는 낮은 가격으로 정산해주면 융자만으로도 농기계를 살 수 있는 편법의 여지가 없지 않다”고 염려했다. 정책 시행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고농기계 거래를 신품과 분리하는 정책 마련과 함께 과거 시행한 바 있는 중고농기계 활성화 대책도 필요하다. 진작 중고농기계 판매에 대한 정비가 있었다면 지금의 농기계 가격·유통혼란의 문제도 덜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격표시제가 부품가 올려 농민 피해 볼 수 있다”
부품에 대한 가격표시제를 실시할 경우 오히려 지금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울러 농민들이 사후봉사 부분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농기계 가격표시제 등으로 판매 수익이 감소한다면 대리점이 이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부품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제제할 근거도 마땅치 않다.


농기계 특성상 고장 시 부품의 신속한 조달은 필수이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매겨도 농민들은 구입할 수밖에 없다. 또 부품 하나의 가격을 이웃 대리점까지 가서 일일이 대조해서 구입하기도 어렵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만약 부품이 다른 대리점보다 비싸다고 농민이 이야기할 경우 어떠한 핑계로든 부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농민들만 입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한 대리점들은 농협의 최저가입찰과 계통구매가 있는 한 이 가격표시제도는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인제공자와 원인은 놔두고 다른 것을 손대는 격이기에 문제의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대리점 경영만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농협은 농기계은행용 농기계를 최저가로 구매한 이후 일부는 은행용으로, 일부는 매취형태로 지역조합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는 매취판매에 대해 다양한 판촉 활동으로 판매독려를 하고 있다. 예컨대 유류지원을 하거나 환원대상사업으로 보고 일정 판매 이상시 인센티브 지급, 융자 금리 제외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2016년도 농기계은행용으로 확보한 농기계 가격의 권장소비자가격 대비 할인율은 트랙터 약 30%, 콤바인 약 25%, 이앙기 약 20% 수준이다. 30% 낮은 가격에 공급되는 상황을 기준으로 대리점들의 압박정도를 추정해보면 아래의 표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도표]



먼저 5000만원 기준시, 농협에서 공급하는 가격을 보면 최소 구입가격은 권장가격의 70%이하다. 70%일 때 최종공급가격 3500만원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보다는 낮아야 한다. 농협에서 구입가격을 권장가격의 50%, 60%라고 가정할 경우 판매마진은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이다. 그런데 동일한 권장가격에서 대리점의 판매마진을 평균 30%로 감안할 경우 회사로부터 구입가격은 3500만원이며 이것은 현재 농협의 판매가격과 같아진다. 이것을 만약 대리점에서 농협과 같은 가격, 3500만원에 판매한다면 그로 인한 양자 간 판매마진의 격차는 1000만원과 500만원이다. 달리 말하면 대리점의 수익이 없으며 농기계구매·판매 금액을 고려하면 적자가 되는 버티기 어려운 가격구조이다.


“농협이 회사를 옥죄어 최저가로 구매해 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회사들이 가격을 부풀렸는데 그 원인을 그대로 두면 뭐가 해결되겠는가”라는 질문을 대리점들은 하고 있다. 앞뒤가 전도됐으니 문제의 본질인 농협 최저입찰과 계통구매 문제부터 해결하고 가격표시제를 하라는 요구이다. “대리점 구매가보다 낮은 농협의 판매가가 제시되는 한 대리점은 망하도록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에 비추어 농기계대리점들은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로 인해 경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사후봉사 수수료 4~5%만 받고 살겠다. 농기계 판매는 모두 농협에서 일괄해서 하면 된다. 그러면 가격도 내려갈 것이 아닌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영의 요체는 가격과 사후봉사, 판촉과 고객관리인데 이 모든 것들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없으면 대리점 경영은 매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사후봉사요원을 줄이게 되고 이는 농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연관해 농기계회사들도 비관적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직접 만난 대리점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이럴 거라면 차라리 과거와 같이 대리점에서는 사후봉사 수수료만 받고 사후봉사에 매진하고, 농협은 지금보다 30% 낮은 가격에 농기계를 판매하면 궁극적 목적인 가격거품 제거와 가격인하의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반응이다. 이는 대리점들의 자포자기적인 대안 제시로 읽힌다.


가격표시제와 원가조사보고 재검토 필요하다    
그동안 ‘영농자재신문’에서는 연속 기획으로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에 대해 검토했다. 법률적인 검토를 시작으로 농기계기업들의 입장과 판매 대리점의 입장을 현장조사와 면담 등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비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법률 전문가도 합리적, 합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담당 정부 부처에서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 시행 이전에 발생될 수 있는 문제를 짚어 보고 이를 해소하는 노력이 아쉽다.


농기계회사들은 원가조사와 관련자료의 제출에 대한 거부 반응이 두드러진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농업기계 원가조사 보고서 제도 철회’를 위한 서명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장경제를 거스를 만한 이유를 정확하게 실증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헌법적 위배 가능성을 가진 이번 제도의 도입과 시행은 마땅히 유예와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난감함의 정도가 크다.


  농협 최저입찰 유지하며 제도강행시 대리점은 적자
“우린 사후봉사만…농협서 팔아라” 자포자기 대안


농기계를 판매하는 대리점들의 가격표시제에 대한 반응은 생사를 건 중대한 문제로 비친다. 문제의 본질이 농협의 최저가입찰과 그에 대응한 농기계기업들의 가격인상에 있다면 그 부분의 조정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의 지적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겠지만 ‘농업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제’가 농기계산업과 유통, 농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사전의 치밀한 준비와 검토, 관련인들과의 소통과 합의가 중요해 보인다.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들을 엄밀히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한 후 제도를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은원 l wons@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