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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순 칼럼

산업 지속성·신뢰 무너뜨리는 ‘모랄 해저드’

박학순의 주섬주섬

보통 윤리관이나 도덕적 절도가 결여돼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행위는 도덕적 해이, 소위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로 비판 받기 십상이다. 또한 일상 상행위 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의를 저버리는 행위는 상도의(商道義) 부재로 지탄받으며 보통의 느낌인 상식적 행위를 요구받게 된다. 


비유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최근 작물보호제 산업계에 수위가 훨씬 높고 강도가 센 등록 농약 자료의 불법적 유용에 관한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충격과 함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년 전부터 지속돼 온 특정 제조회사의 배임 관련 소송행위에서 관련자들의 위법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지난 6월 당사자들이 수년간의 징역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이것뿐이겠느냐는 산업계 전반에 대한 의구심,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다양한 산업계 내 시각과 주장, 지적이 공존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사 직원 관리 미흡을 들어 일부 책임을 나눌 수 있다는 원론적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의 중대성은 물론 업무 편의와 효율성, 직원에 대한 신뢰성 문제와 결부되면서 전혀 힘을 얻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해당 피해 제조사는 자사의 시험성적 사용동의서를 위조하여 수십 여 개의 품목 등록이 불법으로 이루어진 만큼 당연히 해당 품목의 등록이 당장 취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나, 등록기관의 해석은 이 같은 피해사의 주장과는 다른 신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사자들의 위·불법을 인정하는 판결임에는 분명하나 1심 판결인데다 당사자들의 항소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상존하고 있어 최종 판단을 예단하기 어려워 요구 사안을 당장 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등록 취소를 위한 당장의 법적 근거 부재로 이후 조치인 제조업자· 수입업자 또는 판매업자에게 해당 품목의 농약(이미 판매된 농약을 포함)을 회수하여 폐기할 것을 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어서 피해 제조사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럼에도 등록기관에서는 금번 사태를 계기로 등록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지책 마련을 위해 고심 중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 등 그 해법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해당사는 농약관리법 제14조(직권에 의한 품목등록의 취소 등) 제1항을 들어 등록관청에 해당 품목의 즉각적인 등록 취소를 요청하는 한편 판매유통 조직인 작물보호제유통협회 측에도 회원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공지하는 등의 적의 대처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법 제14조 1항은 ‘농촌진흥청장은 품목등록제조업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품목을 등록한 경우에는 그 품목의 등록을 취소하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동 사안의 결말이나 시점을 쉬이 예단할 수는 없지만 법적 시비(是非) 정도에 따라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갈무리될 것이다. 문제는 금번 사례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떤 유사 부정 사례가 재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업계와 관련 종사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굳이 금번의 사태가 아니더라도 일부 등록 시험법에 대한 모순과 시험 정직성 차원에서의 의구심이 수시 회자되고 있음을 말이다. 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流言)이나 비어(蜚語)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말이다. 의구심 해소와 불식, 개선을 위한 관련 당사자들의 자성과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즈음이다. 그러기에 이번에 촉발된 불미스러운 사례가 가져다주는 여운과 타이밍,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다.


하여 앞으로 정부가 실시하는 직권시험과 기업에서 민간시험연구기관(CRO)에 의뢰,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약효·약해시험의 시험법 모순점과 시험 투명성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볼 참이다.

 
또한, 금번의 사태가 등록을 위한 시험성적서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제출을 면제함으로써 등록의 용이성 배가는 물론 농업인의 약제 선택을 넓혀 올바른 사용 및 안전농산물 생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법의 취지를 퇴색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는 측면에서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그 무엇도 존립하기 어렵다. 병사를 믿는 장수를 배반해서는 필패가 기다릴 뿐이다. 선명성과 신뢰성은 물론 철저한 동료·동지 의식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만이 해당 산업의 온전한 지속성과 소속인들의 신뢰와 안위가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속 근로처에서 자연스레 습득된 각종 노하우를 디딤돌 삼고 선용(善用)함으로써 이후 소속 회사와 자신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이자 귀결이다. 그러나 재직 중 자사로부터 부여받은 제반 신임이나 습득한 노하우를 남용하거나 악용함으로써 자사에 여러 유형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상행위 위반이나 모랄 해저드를 넘어서는 범죄 행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불법이자 위법, 부정행위다. 공존공영이 아니라 쌍방이 다 함께 패하고 상처 입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일 뿐이다. 물을 흐리는데 모든 물고기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마리면 족하다. 그래서 더욱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