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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용 칼럼

농기계가격표시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7월부터 ‘농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 제도 시행을 앞두고 현장에서의 우려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움츠러진 국내 농기계시장수요, 경영애로에 직면한 농기계 기업들과 판매상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과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권한다.


농림축산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에서는 혁신적인 정책 하나를 만들었고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 ‘농기계 및 부품 가격표시’ 제도이다. 어떠한 내부적인 검토와 외부적인 협의를 통해서 나왔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리고 그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의 합리성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시행을 앞두고 현장에서의 우려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움츠러진 국내 농기계시장수요, 경영애로에 직면한 농기계 기업들과 판매상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농기계협동조합 조합원들, 즉 농기계 기업들이 공급하는 대부분의 권장소비자가격은 조합에서 만드는 농기계 가격집에 수록되어 있다. 농기계 별로 간단한 규격과 가격, 그리고 정부의 융자지원 기준이 수록되어있다. 그리고 융자대상기종은 아니나 실제 농기계나 작업기 등으로 농가에 공급되는 것들의 가격을 ‘기타 및 일반용 농기계’라는 제목 하에 수록하고 있다. 이것과는 별도는 2012~2013 한국농기계카탈로그가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으나 가격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정부에서 제시한 농기계가격표시제의 검토 배경을 보자. 농기자재정책팀에서는 검토배경으로 “농기계 시장에서의 가격 불투명성으로 인해 농기계 가격의 거품 및 농업인들의 합리적 선택 방해와 혼란 야기”하고 있고, 이로 인해 “농업인들의 농기계 구매 편의 및 농기계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개선책 마련 필요”하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현장의 이야기로 국내 모전문지 신문에 보도된 내용, 즉 물가상승률보다 2배 이상 높은 농기계가격상승률로 인해 권장소비자가격에 대한 불신이 많다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아울러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으로 최저가입찰로 인해 가격거품이 발생했고 이는 결국 각종 보조사업의 비리의 단초가 되었으며 제조업체, 농기계 대리점, 농민 간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기계가격이 거품이라는 것과 빠르게 상승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거품이라 하면 실질적인 가치에 비해 현격하게 가격이 높게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를 증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단순하게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제품을 만드는 생산여건에 따라 생산비와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내 주력 농기계인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데도 가격은 고품질 제품과 비슷하다는 것은 지적받을 수 있다. 가격거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농기계 연구개발 억제해선 안돼

가격이 빠르게 증가한다고 곧바로 제제해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우리에게 부적절할 수 있으며, 농기계 개발과 산업의 발전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신기술과 제품의 상대적 고가와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연구개발을 할 이유가 없다.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고, 주식가격이 급격히 오른다고, 일일이 정부에서 이것을 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사회적인 파장이 클 때는 예외가 될 것이다.


사실 농기계시장에서 농업인도 좋고 농기계 기업인도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시장이라는 장에서 가격을 매개로 서로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에 양측 모두가 만족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지속적이지도 않다. 특히 정부가 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통제한다면 농기계 기업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위기를 탈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저질품을 저가에 파는 전략이 일반화되면 결국 수요자의 피해가 클 것이다.


농기자재정책팀의 시각에 따르면 현재 농기계협동조합이 권장소비자 가격집을 만들고 있는데 농기계 판매가격은 이와 매우 다르며, 그리하여 대리점 체제 유통구조에서 농기계회사가 표시한 권장소비자가격은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판매가격 표시의무 대상품목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농기계는 당연히 판매가격 표시의무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도 일정한 현실적 타당성을 입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법률적인 면의 재검토 필요
법률적인 면에서의 재검토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농자재신문 전보에서 검토한 결과를 보면, 적어도 가격표시제를 하기 전에 기재부와 산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의 협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상품에 권장소비자가격 등을 표시하여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행위를 했느냐에 대한 유권해석도 필요하다. 아울러 권장가격표시 금지 대상이 아닌 농기계의 현행 권장소비자 가격의 표시를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떠한 이유와 근거로 금하겠다는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필요하다. 동시에 행정규칙과 동등한 위상의 제도라면 상위법과 법령 등을 이행하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지금으로는 자칫 거꾸로 규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여전히 주요 농기계가 농협중앙회의 최저가 입찰 내지는 계약구매 대상품으로 되어 있는 한 이 제도는 불편부당할 수도 있다. 농기계 제조업자를 옥죄는 시장지배적인 농협중앙회에 제공하는 가격이 농기계 판매상의 구매원가 정도라면 이들은 파산할 수 밖에 없다.


현장의 의견 충분히 반영하길
막상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적지 않은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한국 농기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농가들에도 이득이 되도록 노력하는 농기자재정책팀 담당자들의 노고에는 감사드린다. 하지만 부정적 파급효과가 목적을 위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변할 것이다.


농기계가격표시제를 시행하기 앞서 아래와 같은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길 바란다. 원가조사의 경우, 과연 외국 농기계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 융자율 차등화 시도 때 보여준 반발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지. 경쟁저해와 지적 재산권 침해소지는 없는지, 모델의 변경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농기계 대리점에서 소비자 가격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지. 수시로 가격을 변동할 수 있을지. 행정단위의 대리점 판매 영역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현재와 같이 농기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농기계 가격을 알리는 것이 불법인지. 법률적 이의 제기시 문제가 없을지 등 검토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밖에도 이 제도에 대한 홍보가 잘 되었는지, 농기자재정책팀에 정밀한 검토와 대응책 마련을 권한다.


모처럼 농기계 산업과 유통에는 중요한 정책이 태동하고 있다. 분명 지향하는 목적은 좋을 것이다. 좋은 목적인 만큼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과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권한다. “안해봤으니 해봐라”는 식의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