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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제언

풀사료 종자 품질 높이기 위한 수확후처리 기계화기술 필요하다

박회만 농촌진흥청 수확후관리공학과 농업연구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채종 시기는 장마철과 겹쳐 수확 후 건조에 어려움이 많다. 높아지는 종자 온도를 낮춰 건조하는 시험을 했다. 온도저하장치를 제작해 시험한 결과, 1시간 안에 상온 이하로 종자 온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식용 곡물과 달리 사료작물 종자의 수확후처리 연구는 거의 없었다. 건조, 정선, 저장 등의 기능을 합친 수확후처리 전과정 기계화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1970년대,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소는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가축이었다. 논밭을 일궈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송아지를 낳아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 일손 부족을 해소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소 대신 경운기, 트랙터 같은 기계가 이용되면서 소의 역할은 바뀌었다. 농사의 밑천 대신 대량 사육을 통해 소비자에겐 맛과 품질 좋은 고기가, 농가에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소득원이 되었다.

 

고기 소비량이 점차 늘면서 축산업 규모도 커지고 이에 필요한 풀사료(조사료)를 대량으로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현재 우리나라는 풀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 여건, 기후에 따른 작황 변동으로 수입 풀사료(페스큐, 티모시, 라이그라스, 알팔파) 가격은 2020년 대비 2022년 약 27∼44% 올랐다. 사료 가격은 경영비의 40~60%를 차지해 농가에 큰 부담이 된다.

 

풀사료는 크게 여름작물과 겨울작물로 나눈다. 여름 사료작물로는 수단그라스, 총체벼, 옥수수, 볏짚, 사료용 피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풀사료는 볏짚이다. 볏짚은 벼를 수확한 후 남는 부산물인데 쉽게 구할 수 있어 58%의 의존도를 보이나 영양적 가치는 풀사료 작물들보다 낮은 편이다.

 

겨울 사료작물의 대표로는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꼽을 수 있다. 2021년 기준, 겨울 사료작물 재배면적 중 약 80%, 전체 사료작물 재배면적으로 치면 62%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도 늘어나고 있어 2021년 기준 약 70만톤이 생산됐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파종을 위해서는 한 해(2022년 기준) 약 7300톤의 종자가 필요하다. 이 중 국산 품종은 약 31%로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채종 시기는 장마철과 겹쳐 수확이나 수확 후 건조에 어려움이 많다. 종자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수분함량도 30~50%로 높다. 거기에 크기까지 작아 쌓아두면 낟알 사이의 공극이 작아 공기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수확 후 발생하는 호흡열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종자의 온도를 35℃ 이상으로 높인다. 이렇게 높은 온도가 계속되면 파종 시 발아율이 낮아져 종자 품질이 떨어진다.

 

지난 6월, 장흥에 있는 국내 유일의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채종 단지에서 종자를 건조하는 시험을 했다. 높아지는 종자 온도를 낮춰 안정화한 후 건조하는 시험이었다. 사각형의 온도저하장치를 제작해 시험한 결과, 1시간 안에 상온 이하로 종자 온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한, 상온 송풍으로 종자 온도를 낮추고 동시에 건조까지 가능한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시험을 진행한 결과, 건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발견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풍을 적용한다면 풀사료 종자 건조 기계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식용 곡물과는 달리 사료작물 종자의 수확후처리 연구는 거의 없었다. 효율적이고 규모화된 건조, 정선, 저장 등의 기능을 합친 수확후처리 전과정 기계화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관련 연구기관들의 협업으로 짧은 시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통해 사료비를 줄이고 국산 종자를 공급해 우리나라 축산농가의 안정적인 생산과 소득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