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4월 16일자(159호)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ositive List System, PLS) 시행 어떠한가?’를 통해 시행 5년차를 맞은 PLS의 전반적인 진행상황과 일부이긴 하지만 관계기관과 단체, 일선 시판상 및 농업인들의 입장을 알아봤다.
시행초기 우려됐던 등록농약 부족이나 비의도적 오염 우려, 저장농산물 적용시기 문제 등은 정부와 판매상, 농업인 등 참여주체별로 보완대책을 적극 추진한 결과 농업현장에서의 사용 불편이 해소됨으로써 당초 우려와 걱정으로 시행되었던 PLS 제도가 큰 혼란 없이 현장에 잘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고 전한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선 시판상이나 농업인들이 느끼는 판매 또는 사용상 불편이나 불만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PLS의 대의와 명분을 위협할만한 수준이 아닌데다 그들의 목소리를 집대성 하지 못했을 뿐이다. 작지만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외침들이다. 진행 양태를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볼 대목이다.
금번 본 지면을 통해 점검해 볼 부문은 초기 우려 중 하나인 ‘등록농약 부족에 따른 부적합 농산물 양산 가능성’분야다.
PLS제도의 전면시행에 따라 정부가 지난 2018년 8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종합 대책에 따르면, 작물별 사용가능한 농약을 지난 2017년까지 167작물 1만6349개 적용대상에 등록되었던 것을 2022년까지 260작물 3만6668개로 대폭 확대 했다. 필요한 잔류허용기준도 대폭 확대하고 후작물 잔류우려 등 비의도적 오염 피해대책도 추진(후작물 잔류 우려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별도로 설정하였고, 항공 살포용 농약의 매뉴얼을 제작·배포 등) 하였다. 이와 함께 농업인·판매상 등에 대한 교육·홍보 강화는 물론 농업현장의 농약 사용 관련 불편을 지속적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의하면, 국내 농작물 재배 과정에서 발생되는 병해충 및 잡초의 종류는 약 5,850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주요 방제대상은 100~500여종에 이른다. 작물별로 발생되는 병해충이 다르고, 병해충별로 필요한 농약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등록농약이 부족하면 당연히 병해충 방제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시험 결과에 의하면, 작물별로 병해충 방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 농산물 생산성은 과수류는 11%, 채소류는 44%, 곡류는 59% 수준에 불과하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병해충 방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실제 과수류의 경우는 방제를 하지 않을 경우 상품성 있는 과일은 전혀 수확할 수 없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이고 보면 병해충 방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농업·농촌의 고령화 및 인구감소로 일손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면 병해충 방제를 위한 농약의 사용은 불가피 하며 이런 현실은 대중의 부정적 인식과 무관하게 대부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농약은 그 자체가 독성이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제조·수입·판매·사용 등 모든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농약관리법」 등 약 40여종의 법률로 관리되고 있다. 농약 사용자는 작물별로 등록된 농약을 안전사용기준을 준수하여 바르게 사용하고, 농약 판매자는 작물과 용도에 맞는 농약을 정확하게 처방하고 판매해야 한다.
농산물 안전성, 선진국에 뒤지지 않아
농작물 중의 잔류농약은 주로 햇빛, 공기, 식물효소에 의한 분해, 증발에 의한 소실, 작물의 비대성장에 의해 희석되고 또한 일일섭취허용량(ADI)과 최대잔류허용기준(MRL), 안전사용기준(PHI) 등 세 가지에 의해 안전성이 철저히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정상적인 농업행위를 통해 수확한 농작물 중 잔류농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산물 중 부적합률은 오래전부터 선진국과 비교해 앞서가거나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국가별 안전성 수준을 살펴보면, 2000년 초반 미국(FDA)은 잔류농약 검사결과 부적합비율이 평균 4%(국내산 2.4%, 수입품 6.1%)로 나타났다. 영국은 평균 1.0%(국내산 0.3%, 수입품 1.6%)로 미국보다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2004년 유럽연합(EU)이 발표한 국가별 농산물중 잔류농약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벨기에 5.5%, 덴마크 2.5%, 독일 8.7%, 그리스 1.8%, 스페인 5.5%, 프랑스 7.3%, 이탈리아 1.4%, 포르투갈 2.8% 등으로 부적합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중 잔류농약에 비교적 관대한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로 알려져 있다.
PLS시행 이후 등록농약 부족에 기인한 부적합농산물 양산 우려는 일단 현재까지는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발표한 PLS시행 이후 국내 농산물 안전관리수준 및 현황 자료에 따르면, 농산물 부적합률은 PLS시행 전과 후가 비슷한 수준이거나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PLS 시행 전 4개년(2015-2018) 부적합률 평균 2.0%에서 시행 후 4개년(2019-2022) 평균이 1.4%로 나타나 오히려 0.6%P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PLS시행으로 인한 농산물 부적합률 양산 우려는 기우로 밝혀진 셈이다. 다행스러운 결과다.
PLS시행 이후 농산물 잔류농약 다성분 분석성분 확대(320→463)로 농산물 안전성 관리가 강화되고 농약 잠정기준 만료와 매년 병충해 발생 등의 농업환경 여건으로 부적합 비율에 진폭이 없지 않았음에도 현장에서 부적합 원인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등 안전농산물 생산에 최선을 다해온 결과라는 것이 농관원측의 설명이다.
여러 우려 속에서도 본격 시행된 PLS제도의 순항 이유는 어느 한 가지에 기인하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동 제도의 온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정·산·상·농 등이 한층 합심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곡물자급률 20%대를 사는 시대의 풍요가 진정한 풍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조건부 풍요는 이상기후 등 변수가 돌발하는 한 언제든 누란(累卵)의 위기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소비자들도 친환경농산물과 GAP, 관행농산물의 안전성을 분리 판단하거나, 농법의 차이를 마치 안전성을 가늠하는 가이드라인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균형 있고 합리적인 과학적 인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농법과 무관하게 정상적 농업행위를 통해 수확한 농산물이라면 그저 위생적 차원에서 깨끗이 세척하여 마음껏 섭취하는 것이 건강한 농산물 소비행위의 지름길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