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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부·여당, 양곡관리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수순 돌입

한덕수 총리, 당정협의회 뒤 대국민담화 “양곡법은 남는 쌀 강제매수법”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공식 건의…“농업발전·식량안보 도움 안 돼”
시행 땐 초과공급량 2030년 3배↑…연간 1조 재정부담 등 문제점 지적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정황근 장관, 국회 본회의 의결 직후 ‘법률안 재의 요구안’ 제안 뜻 밝혀

 

오랜 진통 끝에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수정안)’이 당초 예상대로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정부와 여당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관련 당정협의회가 끝난 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한 총리는 이날  담화문에서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남는 쌀 강제매수 법”이라며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문제점과 부작용이 많다고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했고 법안 처리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어 “정말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면 10조원도, 20조원도 충분히 쓸 수 있지만 이런 식은 안 된다”며 “쌀 산업은 과잉생산과 쌀값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산업을 더욱 위기로 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은 농업계 많은 전문가들도 쌀 산업과 농업 자생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상황이 이런데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일방 처리된 게 유감스럽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고 피해는 농민에게 돌아간다”며 “지금도 정부는 생산과잉으로 쌀값이 폭락할 때 남는 쌀을 사들이는 쌀 시장격리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 조치는 긴급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 총리는 “재정부담은 연간 1조원 이상”이라며 “이 돈이면 300개의 첨단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000명을 양성할 수 있고 농촌의 미래를 이끌 인재 5만명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덧붙여 “진정한 식량안보 강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급률이 높은 쌀을 더 생산하는 건 합당한 결정이 아니며, 해외 수입에 절대 의존하는 밀, 콩 같은 작물의 국내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농산물 수급에 대한 과도한 국가개입은 이미 해외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며 “60년대 유럽에서 가격 보장제를 실시했다가 생산량 증가와 가격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부작용으로 중단했으며, 태국도 지난 2011년 가격개입정책을 펼쳤다가 수급조절 실패와 과도한 재정부담으로 3년 만에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쌀 산업의 발전과 농업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이러한 결정은 국익과 농민을 위하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한 결단이라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야당 주도로 통과시킨 수정안은 의무매입 조건만 일부 변경했을 뿐,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하는’ 본질적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어 쌀 생산농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 정부에 공식적으로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제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장관은 이어 “정부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해 그 뜻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이번 법률안은 그 부작용이 너무나 명백하다”면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제안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격리 요건을 초과생산량 3~5% 범위에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이거나, 평년가격 대비 5~8%의 범위에서 역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 하락한 경우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벼 재배면적이 전년보다 증가할 경우 시장격리 여부에 대해 정부의 재량권을 부여하고, 벼 재배면적이 증가한 지자체는 정부 매입물량 감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벼 및 타작물의 재배면적을 연도별로 관리하도록 하고, 논에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에 대한 재정적 지원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당초 민주당이 발의한 ‘초과 생산량 3% 이상’,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이었으나 국회의장의 조정안을 수용해 다소 완화된 수정안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이달 초 농민단체와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쌀값 안정과 농가 소득 보전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인 반면 법안 처리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비슷한 취지의 새 입법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공방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