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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순 칼럼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여행

필리핀 여행에 동행한 지인의 농약에 대한 ‘불신’
가슴 한켠의 멍멍한 여운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만나는 곳, 새 길을 개척하며 헌 길을 버리게 하는 것,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 바로 여행(旅行)이다. 지난 3월 1일. 그리도 타고 싶지 않은 비행기를 향한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기류변화가 주는 흔들림이 죽도록 싫다. 허나 거부가 능사일리 만무였기에 큰 내색 없이 설렌 척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치며 인천국제공항을 재촉했다. 몇 해 전부터 방문을 요청받은 아내의 죽마고우 친구가 머문 5박 6일간의 필리핀 방문을 위해서였다. 새벽 5시, 이곳저곳서 모인 7명의 지우들과 조우한 일행은 언뜻 탑승구를 향해 늘어선 인파를 보고선 그만 아연(啞然)하고 말았다.  


수 년 만에 나선 여행길에 비해, 공항은 떠나고자 하는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본 체크인과 수하물 송부, 입장 길 티켓 재확인, 소유물 검색 및 신검 등의 4단계 관문을 지나는데만 두어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반면 마닐라를 향한 4시간의 비행 소요시간은 짬 수면과 기내식, 짧은 영상 시청 등으로 소진하기에 충분했다. 


솜털처럼 뽀얀 구름 위를 날아 마닐라 공항이 가까워질 즈음,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필리핀 특유의 가옥들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논과 밭이 정겹다. 쾌청한 날씨에 후텁지근한 기후는 사전 입수한 정보이하여서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한 시간의 시차를 뒤로한 채 도착한 마닐라 공항의 수수함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온 인천공항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기억 저편이다. 곳곳의 웅장함이나 고급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나름 청결함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은 가득해 보였다.

 
지인의 마중으로 꽉 막힌 공항 탈출이 시작됐다. 무더위 속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준 탓에 넓지 않은 공항을 탈출하는 데에는 수 십 분을 족히 보낸 뒤에야 가능했다. 다스마리냐스(Dasmarinas)시 까비떼(cavite)주에 있는 지인의 집을 향하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험하고 난감함의 연속이다. 당연하다는 듯 중앙차선을 넘나드는 수많은 차량들과, 트럭을 개조해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찌프니’라는 마을버스, 소위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트라이씨클’이라는 전동인력거들이 섞여 주행하는 교통이 위험천만이다. 뿐만 아니다. 다반사인 끼어들기와 신호 없는 좌회전과 유턴이 직진을 압도하는 희한한 교통 흐름속에서도 양보와 관용이 넘실대며 경적 한번 울리지 않은 그들만의 현대식 삶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혹독한 노동 지켜보며 여행 참맛 잃어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촌음이 아쉬운 듯, 일정을 강행했다. 골프와 1박 2일간의 해변 관광이 이색적이고 좋았다. 생전 보지도 먹지도 못했던 온갖 열대과일 챙겨 먹는 재미는 덤이다. Fort Santiago 요새 방문과 Rizal Park공원 일정 또한 힐링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허나 필리핀 라구나주에 위치한 ‛팍상한 폭포(Pagsangjan Falls)’를 보기 위한 이동과정은 관광이나 쾌락이기보단 차라리 고통의 시간이었다. 카누에 몸을 싣고 한 시간여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현지인들의 지나친 맨발 투혼을 요구한 것이어서 그렇다. 강을 끼고 서 있는 갖가지 기암괴석들과 흐드러진 초목들이 장관을 이루지만, 차마 한시의 시선조차 둘 수 없었다. 폭포수 또한 험한 길에 비해 너무 작고 볼품 없는 작위적 작품 같아 보였고, 힘든 노동만큼이나 팁을 요구하는 현지인들의 방식 또한 지나치며 노골적이어서 개운치 않았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신조어가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죄책감이 든다는  guilty와 기쁨을 의미하는 pleasure의 합성어다. 어떤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면서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는 심리를 나타낸 것이다. 예를 인용하면, 학창시절 부모님 몰래 만화방 가기, 자율학습 땡땡이치기 등으로서  몹시 나쁜 행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금기시 하는 것에 반항했던 일들을 나타낼 때 쓰이는 표현이다. 


앞 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현지인들의 혹독한 노동을 지켜보며, 좀처럼 관광의 맛과 희열을 가질 수 없음은 필자만의 인지상정이 아니었다. 여행의 참맛에 깊은 상처를 내기에 충분했고 일행들의 소감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며 생존을 위한 불가항력적 수단이라는 견해도 있었지만 일행의 동조를 구해내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론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관광코스다.

 

해프닝이 발생한 건 여행 말미의 또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아침식사 후의 일이다. 골프장을 품고 있는 지인의 집에서 기거한 탓에 자연스레 주변 잔디관리 방법과 열대과일의 농약 사용 유무 및 그 안전성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던 와중, 국내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일행 중 한 지인이 겹겹이 쌓인 농약에 대한 불신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게 발단이었다. 짧은 해명에 나섰지만, 불리하면 과학을 앞세우는 이들을 믿지 않는다며 농약의 먹이사슬에 의한 인간의 피해를 기정사실화 한 지인의 강단 있는 소신에 ‘과학적 사실’을 앞세운 점잖은 반격을 개시했다. 


수 십여 년간 농약업계에 몸담으며 안전성 알리기에 매진해 왔던 필자는 적(籍)이 바뀐 사실도 잊은 채 어쩌면 당연한 인식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인 설득에 나서는 오지랖을 떤 것이다. 대화는 자연히 조용한 논쟁 형식으로 이어져 갔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지 않은 조심스러운 관계 속에서 ‘찰나의 자제력’이 발휘되지 않았다면 자칫 다툼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묘한 흐름이었다. 학과과정에서 실제 농약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흔한 인식의 오류로 정리하고, 그런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설득에만 나서려 했던 필자의 한계 또는 오랜 직업병을 인정 한 이후에야 상황이 갈무리 됐지만 여운은 쉬이(easily) 가라앉지 않았다. 


수년만의 해외여행 일정은 심란함과 일시적 죄책감 속 희열, 인생 속에서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새로운 교훈을 얻는 등 여행 목적 외에도 적지 않은 시야를 확보해 준 소중한 기억의 한 편린으로 각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