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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농협계통 농업기자재에 대한 ‘진실보고서’

신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에 전하는

농업계가 신임 농협중앙회장에게 거는 기대는 지대하다. 농협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비중이 대단하다는 점에서다. 그래선지 김병원 신임회장도 취임 일성으로 ‘농심(農心)’을 강조하면서 반드시 농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농협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의지를 내비쳤다.


기실 농협은 농민의 자조조직이면서도 농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기엔 적잖은 무리수가 따른다. ‘그래도 농협’이라는 우호적 시각으로 농협의 기여도를 인정은 하면서도 대체적으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지탄의 목소리를 높인다. 김 회장이 취임 후 첫 일정으로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개원식에 들러 “우리 농협은 설립 당시부터 농협의 원칙이 있었다.”고 강조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게다. 농협은 세월이 흐르면서 농협임직원들이 농민도, 농심도, 농협이념도, 목적도, 원칙도 다 책상 속으로 밀어 넣은 채 ‘경영목표’에만 급급하다보니 농민들은 ‘우리의 피를 뺏어간다’ ‘농협의 농약은 왜 비싸냐?’는 등의 비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신임회장의 판단이다.


현재 농협의 계통 농기자재사업에 대한 현주소도 다를 게 없다. 특히 국내 농약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계통농약사업과 농기계은행사업은 농협계통사업의 당초 취지와 달리 그 부작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계통농약사업은 일선농협의 ‘돈벌이 수단’이 된지 이미 오래고, 농기계은행사업은 ‘최저가입찰제’가 도입된 이후 국내 농기계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이제 ‘변명’하지 않고 ‘인식의 가치’를 높여 ‘농민의 농협’으로 거듭나자는 신임 김병원 회장의 의지에 농업기자재업계의 기대감을 실어 농협계통 농기자재에 대한 ‘진실보고서’를 전한다.


농협계통농약, ‘대수술’ 거쳐야 ‘농심’ 회복 가능
농협계통농약은 시장점유율 면에서 농약전체시장의 60%선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올해 계통농약 신청금액은 6146억 원으로 지난해의 5881억 원보다 265억 원(4.5%)이 증가했다. 특히 기준가격을 0.8% 인하한 점을 감안하면 5.3%가 늘어난 셈이다.[표1] 여기에 농협자체구매 물량까지 합하면 농협의 시장점유율은 훨씬 더 늘어난다.



특히 농협중앙회 자회사인 농협케미컬의 계통농약 신장세는 가히 괄목할만하다. 농협케미컬은 올해 계통물량으로 1907억 원을 기록했다.[표2] 지난해(1644억 원) 보다 263억 원이나 증가한 금액이다. 농협(남해화학)에 인수되기 이전의 영일화학 전체 매출액이 300억 원 상당이었던 것에 비하면 농협케미컬의 신장세는 엄청난 수준이다. 농협 인수 이전 매출액 기준 ‘꼴찌 회사’가 인수 15년여 만에 사실상 1위를 넘보는 회사로 급성장했다.



그렇다면 농협 계통농약과 농협케미컬의 이 같은 성장은 과연 국내 농약업계와 농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워진다. 그 질문 안에는 당연히 순기능과 역기능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농협계통농약의 이 같은 신장은 농민들이 싼값에 농약을 구매하고, 올바른 농약사용에 대한 지도기능이 수반될 때 명분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곧 순기능이다. 하지만 농협계통농약은 농민조합원들의 농약가격에 대한 민원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농약 방제처방 수준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들 말한다. 김 회장이 취임 당일 ‘농협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강연에서 “농민들이 (일선농협에) <세단>농약 사러 왔다고 하면 가격만 말하고 그냥 파는 반면 농약 시판상은 <세단>은 어떨 때 쓰고 어떨 때 쓰지 말라고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지적한 대목은 그 좋은 예로 충분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농협은 농협케미컬 인수와 더불어 농약시장의 60%가 넘는 마켓쉐어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소위 ‘농약원제 구매단계에서부터 생산·출하, 판매(소매)단계에 이르기까지 농약산업 전반에 걸쳐 속속들이 모르는 것 없이 다 알고 있다’고 봐야 옳다. 다시 말해 “농협이 ‘인식의 가치’를 높여 ‘농민의 농협’으로 거듭나려는 의지만 분명”히 한다면 농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농약가격을 산출할 수 있고, 또 실현할 수 있다고들 지적한다.


농약업계 다수의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농협중앙회의 계통농약사업의 명분과 취지를 모르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일선농협의 계통농약사업 행태는 시판농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농약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는 특별장려금, 해외여행 등 다양한 방법의 선심성 접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도 농협은 농민조합원들의 ‘농협농약’에 대한 민원을 잠재우는 수준에서 선심성 할인판매로 시장가격만 교란시키고 농업생산 보조사업을 독점하는가 하면 농민조합원들에게 농산물수매권을 미끼로 농협농약 구매를 강요하는 등 ‘시판농약’과의 불공정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최근 몇 년간 농협계통농약의 평균가격 인하율은 기껏해야 5%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몇 해 전 특정업체가 농협과 시판연합체에 제시한 다수품목의 현금 판매가격 할인율이 최소 42.0%에서 최고 70.6%에 달했다는 점은 ‘농협농약’이 분명히 되짚어 봐야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계통농기계 ‘최저가입찰’로 피멍든 토종기업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은 계통농약사업과 견줄 바도 아니다. 농기계업계 관계자들은 농협농기계은행사업을 빗대 농기계산업의 ‘암 덩어리’라고 쏘아 붙인다. 물론 농협 농기계은행사업 본연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 당위성을 앞세운 최저가입찰 구매제도가 국내 농기계산업 전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는 생산업체의 과도한 반값응찰을 야기하고, 이는 곧 불필요한 모델변경과 과당 출혈경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토종 농기계시장은 일본산 농기계가 급속히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더구나 농협의 농기계 취급물량은 많지도 않다. 국내 농기계 시장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27.4% 정도이며, 세분하면 농기계은행사업용이 11.7%, 지역조합의 계통사업과 자체사업이 15.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농기계대리점의 비중은 72.6%에 달한다.[도표]



그런데도 ‘농협농기계’의 시장파괴력은 국내 농기계산업을 뒤흔들고도 남는다. 최저가입찰제라는 농기계 매취 과정의 특성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 때문이다.


농협이 올해 농기계은행사업용으로 일선농협에 공급하는 매취사업분 주요 농기계 가격을 보면 그 원인이 확연해진다. 주력기종의 일선농협 가격할인율이 20~30%에 이른다. 한국농기계신문 보도에 의하면 트랙터의 경우 권장소비자가격 대비 평균 30% 할인된 가격에 공급되며, 지난해 재고분은 최대 35%까지 할인한 가격이 책정됐다. 권장소비자가격 6620만원인 대동 PX800PSC(80마력) 트랙터는 지역농협에 30% 할인된 4634만원에 공급되고, 권장가격 6050만원의 국제 Luxen 85ES(85마력) 트랙터는 4235만원, 동양 TX903AQB(92마력, 권장가격 6680만원) 트랙터는 4676만원, LS XU6155-QTL(55마력, 권장가격 3800만원) 트랙터는 2660만원으로 각각 결정됐다.


특히 지난해 계약물량인 LS XR4155 트랙터는 권장가격(3450만원) 대비 35% 할인된 2242만여 원 선에서 지역농협에 공급된다.


콤바인 역시 업체별로 다소 차이는 있으나 22.4%~25.8%의 할인가를 적용받고, 재고분의 경우 최대 32%까지 할인된다. 이앙기도 권장가격 대비 15.4%~24.6%의 할인가를 적용받는다.


농협농기계의 이 같은 최저가입찰제는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농기계를 구매하면서 시장에서의 이중가격 형성, 상대적으로 업체로부터 비싼 가격에 농기계를 인수하는 대리점과의 마찰, 낙찰회사와 낙찰받지 못한 회사 간의 갈등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농협의 최저가입찰제는 특히 농기계시장의 이중가격을 만들어 대리점의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생산업체에게는 과도한 가격할인의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농기계대리점들은 생산업체의 할인가격 보전의 짐을 떠안게 되고, 생산업체 역시 최저가입찰 부분의 수익적자를 메우기 위한 시장대응 행위로 과도한 가격거품과 잦은 모델변경을 일삼는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국내 토종기업의 모델 증가는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이며 거의 모두 가격상승을 동반하고 있다. 일본기업이 모델 수 확대를 하지 않고 생산비 절감과 효율적 관리, 사후관리의 용이성, 중고농기계 재활용 촉진 등을 도모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국내기업의 경우 5년 전에 생산되던 트랙터 모델(58개) 가운데 지금도 생산되는 모델은 14%(8개)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현존하는 이들 8개 트랙터 모델의 가격은 극단적이라고 할 정도로 최저 22%에서 최고 44%까지 인상됐다.


반면 일본산 농기계의 국내시장 공략법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엔저현상에도 불구하고 소폭의 가격인상 전략과 할인판매로 시장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그동안 농가에 보급된 6조승용이앙기 모델의 평균가격을 보면 지난 2010년 한국산이 일본산(구보다)에 비해 15%정도 저렴했다. 그러나 이후 토종제품의 가격상승률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이제는 구보다 제품과 2%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 결과 일본산 주요 농기계는 2013년 공급대수 기준 트랙터 13%, 승용이앙기 42%, 콤바인 28%의 시장을 점유(매출액 기준 약 20%)했다.


이렇듯 농협 최저가입찰로 인한 국내 농기계시장의 유통혼란과 가격 왜곡은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다. 농기계생산업체의 수익성 하락과 함께 장기투자 기피현상이 현실화되고, 일반 농기계대리점의 경영악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데다 일본산 농기계의 국내시장 잠식속도가 두드러지는 현상은 국내 농기계시장이 사멸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번 양보해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의 최저가입찰제도가 실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인다. 농협은 최종소비자인 농민조합원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마력이하 트랙터에 대해 최저가 경쟁입찰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지만, 최저가입찰제도가 야기하는 유통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아닌 농민조합원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농기계업계와 관련전문가들은 신임 농협중앙회장에게 농협농기계사업의 최저가입찰제도의 대안마련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게다. 농협 최저가입찰제도의 개선과 함께 가격거품에 대한 업계의 뼈저린 자성과 변화, 기업의 구조조정과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대책, 일본산 농기계의 과도한 시장점유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대책과 농기계산업의 중장기 육성방안 등은 국내 농기계산업의 생존을 가늠하는 이정표임에 틀림없다.


이은원 l wons1602@gmail.com  심미진 l chouba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