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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사람은 작물을 키우고 작물은 사람을 키운다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와 광화문 근처에 있었다. 교보빌딩 앞에서 잠시 서있는데 시골 친구가 건물 입구의 표지석 글자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바위 세 개에 나뉘어 새겨진 글자들은 많은 이들에게 이미 익숙해져 표어처럼 굳어진 문장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시골 친구가 물었다.
“참 좋은 말이다. 나도 책을 꾸준히 읽었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됐을까?”
“이미 훌륭하잖아. 책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된다?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더 사악해지는 경우를 한두 번 봤냐?”


서로 되물을 뿐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좋은 도구가 확실해. 어느 세상이든 잡초는 늘 있으니까.”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며 친구가 불쑥 말했다.
“사람은 작물을 키우고 작물은 사람을 키운다. 이래도 말이 되겠다.”


헛, 그야말로 명언이다.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확률보다 작물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적어도 내 친구를 보면 그렇다. 친구는 작물을 키우며 동식물의 생성과 소멸과 환생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공부한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느낀다. 농부는 수도자다. 그들은 한권의 책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우주섭리를 읽고 체화한다. 머리로 책을 읽는 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가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두 친구가 서로 상대방 동네를 방문하며 겪은 체험 여행기이다.


먼저 도시 쥐가 시골 쥐네로 놀러간다. 산과 밭에서 먹거리를 해결하고 밤하늘의 낭만에 빠지기도 하면서 시골 삶을 맛본다. 며칠 안 간다. 도시 쥐는 시골의 답답함과 ‘노잼’을 못견뎌하며 시골 쥐를 데리고 도시로 떠난다. 시골 쥐는 도시의 화려함에 놀라고 맛있고 풍성한 먹거리들에 반한다. 동시에 도시의 위험들과 각박함을 경험한다. 며칠 못 견디고 시골 쥐는 시골로 되돌아간다. 도시 쥐가 시골로 먼저 내려갔는지 시골 쥐가 도시로 먼저 올라왔는지는 헷갈리지만 하여간 그런 얘기다.


저마다 먹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서있는 자리들이 다르다는 암시가 담긴 우화였나 본데, 내 기억 속에는 흐릿한 줄거리와 함께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시골 쥐의 초롱초롱한 눈, 윤기 없는 털, 소박으로 가장한 가난한 이미지들이다. 도시 쥐는 당연히 반대로 기억된다. 반짝이는 눈에는 눈치 빠르고 영악한 느낌이, 윤기 있는 털과 폼 나는 옷가지들에는 부를 위장한 허세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이 기억은 뒤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 작가의 의도에 휘말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쥐의 공통점이 있었다. 쥐라는 것 외의 유일한 공통점은 눈이었다. 두려움, 슬픔, 견딤 같은 느낌들이 두 쥐의 눈에 담겨 있었다.


답답하고 두렵고 아련한 2020년 한복판이다. 나이 한 살을 물어내라고 외치고 싶지만 어디에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더니, 시골로 돌아가는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나무에게 물어 봐.”
친구는 정말로 그렇게 한다고 한다. 나무는 금세 답을 주지는 않지만 어느 날인가 슬쩍 깨닫게 해준다고 한다. 식물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은 얼마나 정확한 팩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