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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쇠스랑] ‘라벨 호랑이’ 등에 올라탄 농진청

농약 ‘음독’·‘오남용’은 라벨로 풀리지 않는다
현실 반영치 않은 ‘민원’에 목매서는 답 없어
농약 안전사용 교육·홍보활동 강화로 풀어야

농촌진흥청이 ‘농약 포장지(라벨)’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농진청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농약병과 음료수병의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은 뒤 ‘농약 포장지 개선방안’에 대해 고심해 왔지만 딱히 해결책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보니 가히 ‘기호지세(騎虎之勢)’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농약 포장지 개선 필요성에 대한 농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오히려 비판론만 확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어떠한 개선방안을 내놓더라도 현재의 라벨보다 더 나아지거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경험에서다. 

 


농진청은 이번 국감에서도 동일한 지적과 함께 빠른 개선책을 요구 받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지적사항인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개선되지 않아 농민들이 농약사고에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이었다. 따라서 “농약과 음료수가 확실히 구분되어 농약 오남용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개선”하라는 채근이었다.

 

농진청은 이러한 지적&채근에 대해 “이달 중순 이후 농업인단체와 농약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을 거쳐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이긴 하다. 농진청은 최근 10년(2009~2019년) 사이 국회나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7번이나 농약 포장지를 바꿨지만[표1] 라벨(농약 포장지) 변경을 통한 음독사고나 농약 오남용 문제를 다잡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농약업계 스스로 고독성 농약의 등록취소 등을 통해 음독사고를 현격히 줄일 수 있었다. 농약업계는 또 농업인들에게 농약안전사용 교육 및 홍보활동 강화 등을 통해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갖고 있다.

 


그동안 ‘농약 라벨(Label)’를 둘러싼 문제제기는 매번 ‘음독사고’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농진청은 ‘음독’과 ‘라벨’의 상관관계가 그리 명확치 않다보니 ‘오남용’을 덧대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내는 모양새였고, 그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농약제조회사가 떠안았다. 더구나 농진청은 농약 라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기껏해야 글자가 크니 작니, 그림을 넣니 마니를 따지는 수준이 전부였다. 이번 역시 대학에 연구용역까지 맡겨가며 ‘농약 포장지 표시기준 개선(안)’을 마련했다지만, 이전보다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반대로 농진청이 농약 라벨 개선 필요성을 제시하기 위해 내놓은 연구용역보고서를 보면 현실을 몰라서 라기보다는 ‘오죽했으면…’이란 생각 외에 달리 해석하기 힘들다. 연구보고서를 요약하면, ‘농약의 잘못된 사용과 보관으로 인명피해, 조류집단 폐사 등이 발생하고 농촌 노인의 압도적 비문해(非文解) 비율 및 노안(老眼) 등이 농약 오남용 문제의 원인’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덧붙여 ‘농약 포장지는 색상이 화려하고 좁은 공간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며, 정보가 임의 배치돼 있는 등 표준화가 이뤄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글씨가 작아 위험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데다 용어도 난해하다’는 것이 현재 농약라벨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라벨에 표기하는 글자 크기를 확대하고 그림을 다시 넣더라도 ‘농약병을 음료수병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이고, 곧 농진청의 명분이자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농약 ‘음독·오남용’은 라벨로 풀리지 않는다
현실 반영치 않은 ‘민원’에 목매서는 답 없어
농약 안전사용 교육·홍보활동 강화로 풀어야


그러나 농약으로 인한 음독사고나 오남용 문제는 라벨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그동안 수차에 걸쳐 다양하게 경험해 봤다. 가령 농진청의 구상대로 라벨의 글자 크기를 키우고 그림을 넣는다고 해서 농약병과 음료수병도 구분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농약 오남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실 대다수 농업인들은 농약병에 붙어 있는 라벨을 보고 농약 사용법을 배우고 안전사용기준을 익히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농협 방제처방사나 시판상인들이 설명하는 사실상의 ‘처방전’에 따라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약제조회사들도 모든 영업조직과 마케팅 조직을 현장에 투입해 안전사용 등을 안내하고, 여기에 대농민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상시적인 상담에 나서고 있다.  

 
그렇잖아도 농약회사들은 PL법(제조물책임법)에 묶여 갖가지 의무사항들을 라벨에 표시하다보니 이중 또는 삼중·사중의 다중라벨이나 북라벨 또는 별지 등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그러다보니 농약 라벨에는 아주 기본적인 주요사항만 표시하고 이외의 적용대상이나 안전사용기준 등의 필요사항은 스마트폰 앱(어플)이나 QR코드, 바코드 등을 활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용할 수도 없다.

“라벨을 어떻게 바꾸든, 추가비용이 얼마가 들든 농약용기 표시방법을 개선해서 음독이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면 따르지 않을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농약업계 다수의 관계자들은 “농진청이 현실을 반영치 않고 민원에만 매달려 한해 걸러 한번씩 라벨을 변경하라니 답답할 지경”이라고들 말한다.


어쨌든 농약 음독이나 오남용은 라벨(포장지)로 풀 문제는 아니다. 또 농약 라벨을 어떻게 바꾸고 개선한들 지금의 라벨보다 효과적이거나 나아질 기대도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해 농약 라벨(포장지)만 탓하는지 모르겠다. 농진청은 이제라도 ‘농약 라벨’이라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와야 한다. 농약 라벨 변경의 직접 당사자인 농약제조회사들은 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참아가며 호랑이 꼬리에 매달려 가고 있는데도, 국회나 시민단체 등의 가당찮은 민원이 두려워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농진청이 '미워진다'. 

    
차재선 편집주간 | newsfm@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