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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에세이] 어떤 소년의 자산

-인생이 유통이라면

 

산골에 살던 어떤 소년이 있었다. 학교에 가려면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산 넘고 고개 넘어 뚝 떨어진 집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늘 혼자였다. 산 넘고 고개 넘어 한참을 걸은 뒤에야 겨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등교 때나 하교 때나 늘 혼자가 되었다.

어느 해 봄, 귀가하던 소년은 산기슭 아래로 쭉 늘어선 냉이를 캤다. 심심하게 걷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열심히 캔 냉이를 집으로 가져갔더니 어머니도 좋아했다. 냉이국과 냉이무침을 해준 어머니가 이런 건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되겠다는 말을 했다.

이튿날 소년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냉이를 한보따리 캐 책가방을 채웠다. 그날은 학교에서 바로 귀가하지 않고 시장으로 갔다. 정말로 그것을 사주는 곳이 있었다. 푼돈이긴 해도 이게 어디냐 싶었다. 신기했고 감개가 무량했다. 기왕에 온 시장을 여기저기 둘러보니 별별 나물과 채소들이 팔리고 있었고 그것들은 소년이 다니는 산에 널려 있는 것이었다. 고사리, 씀바귀, 두릅, 미나리들이 모두 돈이었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소년은 고개를 그냥 넘지 않았다. 봄에는 나물을 뜯어 가며 걸었고, 여름에는 산딸기와 다래를, 가을에는 송이와 도라지를, 또 더덕을 캐기도 했다. 눈 쌓인 겨울에도 산에는 돈 되는 것이 있었다. 토끼발자국을 따라가 토끼를 잡을 수 있었고 어느 해인가는 무더기로 잠들어 있는 뱀무리를 발견해 제법 큰돈을 만질 수도 있었다.

소년에게 그 길은 재미를 주는 놀이동산이자 돈이 되는 부동산이었다. 학교 오가는 길이 점점 재미있어졌고 어느 해부터인가 친구들이 따라붙어 공동 채집, 공동 수렵을 하기도 하였다.

 

소년은 그럭저럭 성장해 그럭저럭 결혼해 그럭저럭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 동안 친구들은 하나둘 고향을 떠났다. 친구 없는 동네, 가난한 집, 희망 없는 산골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었고, 무리하지 않는 한 탈날 것도 없었다. 그 동안 조금씩 조금씩 집 옆의 땅, 그 땅 옆의 땅을 사기도 했다. 모두 소년이 오가던 산길 주변, 계곡 주변, 용돈벌이를 하던 놀이터 주위였다. 정든 기슭 한쪽에는 아담한 오두막을 한 채 지어 별장처럼 만들기도 했다. 소년이 토끼를 좇다가 지쳐 잠시 쉬던 곳이었다.


지난해 여름, 그 집에서 소년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 친구들이 말했다.

너만 멀리 떨어져 살아 늘 불쌍하고 안돼 보였는데, 요기조기 온산을 자기 것처럼 뒤적거리며 다니는 걸 보고 우리 모두 엄청 신기해 했었지. 돌이켜보면 너는 외롭지 않았어. 오히려 우리가 외로웠지. 이렇게 나이 들어서 보니 마찬가지가 되었네.”

소년이 말했다.

글쎄다, 너희는 똑똑하잖아. 그러니까 세상에 나가서 활발하게 활동해야지. 나야 뭐, 잘난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그냥 여기가 좋아.”

그 성격은 곧 삶의 철학이 된 듯 자식들도 무욕의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긴긴 세월 만에 어렵게 모인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는데, 주로 이런 투의 말이었다.


-부럽고 또 부럽다. 실제 등기된 재산보다 훨씬 큰 자산을 갖고 살잖아.

-주어진 환경을 온통 자기한테 최적화시켜 살아 왔으니인생이 유통이라면 이보다 효율적인 기법이 있을까?

-우리 친구들 중 출세한 건 너 하나뿐이다. 가장 행복한 인생을 일구어 낸 친구여.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