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무역인을 만났다. 바나나, 오렌지, 석류, 파인애플, 포도, 체리, 망고, 아보카도… 웬만한 과일들은 대부분 취급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지구촌 곳곳의 과일들을 수십 년간 취급해 왔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빠르고 내일을 가늠하기 힘든 시기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가 최근에 겪은 일 하나.
미국산 석류를 수입하는 과정, 상품을 수작업으로 선별하는 자리였다. 당도는 물론 잔류농약 여부까지 정밀 체크하는 기기 검사를 통과한 상품인데도 이 회사의 아주머니 한 분이 일부 석류들을 한쪽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미국 측 관계자가 이의를 제기했고 한국의 수입사가 답변했다. “현지에서 첨단기기로 검품을 마친 것인데 왜 골라내고 있습니까?”
“못 믿어서가 아니라 마지막 단계는 사람이 직접 체크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입니다.”
서로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상황, 아주머니가 골라낸 석류를 갈라 속을 확인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석류의 속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완벽하게 검품했는데, 이런 석류가 섞여 있을 줄이야.”
양측이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고의로 빚은 일은 아니었음을 양측 모두 알고 있다. 그건 그렇고, 최첨단 기기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 아주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주머니의 답은 간단했다.
“무게가 달랐어요.”
대단한 노하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감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입사 대표가 말했다.
“종종 겪는 일입니다. 기기나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먹는 것은 꼭 사람의 직접적인 체크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 아주머니들입니다. 한국 여자들의 손 감각은 아무도 못 말리죠.”
신선식품의 품질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섯 가지다. 크기, 모양(외모의 형태를 말함), 색깔, 신선도, 향이 기본이다. 물론 이 다섯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켰는데도 불구하고 A급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훌륭한데 희한하게 당도가 낮은 과일이 있고 더러는 허용치를 넘는 잔류물질이 체크되기도 한다.
위 다섯 가지 요소는 눈(시각)과 손(촉각), 코(후각) 따위로 판단할 수 있다. 상인들은 대개 척 보면 안다. 그리고 말한다. 선수들끼리 왜 이래?
그것이 요즘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정밀한 기기들이 사람의 농익은 안목을 대신하기 때문이고 그것들의 정확성이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기계다. 주어진 항목 외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간혹 오류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을 사람이 정리해야 한다. 이 무역인도 그 점을 강조한다.
“브랜드가 명확하고 크레딧이 분명한 기업이라 해도 반드시 농장을 직접 가봐야 합니다.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흙의 상태가 어떤지, 주변 환경은 어떤지, 농장 주인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거래해야 합니다.”
“농장주의 얼굴까지? 잘 생긴 사람은 농사도 잘 짓나요?”
“그 사람의 얼굴이 건강해 보이는지, 행복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지, 그런 걸 보는 거죠. 그 농장의 작물을 제일 많이 먹는 사람이니까, 그가 건강해야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
음, 과일 하나만으로 수십 년 장사해 온 사람의 말. 체화된 안목. 무엇인가를 맛있게 먹고 있다면 그것의 출발점을 한번쯤 음미해 보라는 권유 아닌가. 이 장사꾼, 그러고 보니 건강해 보이고 표정이 밝다.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