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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가을의 질문


봄과 가을은 여름과 겨울의 중간에 있는 계절이다. 봄은 겨울 뒤 여름 앞에 있는 계절이고, 가을은 여름 뒤 겨울 앞에 있는 계절이다. 뭐 누구나 다 아는 자연 현상이다.

봄과 가을은 온도도 비슷하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그런데 봄 하늘은 낮고 가을 하늘은 높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됐다. 하늘이 높고 낮을 리가 있는가. 하늘은, 높아 보이고 낮아 보이는 것뿐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하늘의 높이(거리)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온도, 비슷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봄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고 가을 하늘은 높이 올라가 있으니. 모두가 배웠지만 어느덧 잊어버린 이유는 바빠서가 아니라 관심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알고 있었지만 잊어버린 그 답은 대기 중의 오염물질 차이다. 가을에는 대기 중의 오염물질이 가장 적은 계절이라 하늘이 높다고 한다. 가을의 대기는 왜 깨끗해질까? 앞의 계절 여름에 장마와 태풍이 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기를 확 쓸어버려 주니까. 장마와 태풍이 땅과 하늘을 청소해 주기 때문에 그 뒤에 오는 가을하늘이 높아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봄은 대기가 불안정하다.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땅에서 꿈틀꿈틀 뭔가가 자꾸 일어나고 태동하면서 하늘에도 부유물질들이 많이 떠다닌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보이는 이유다.

한국인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가을은 9월부터 11월까지이다. 늦장마가 끝나고 난 9월 초순 이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늘이 높아진다. 1년 중 가장 높은 하늘은 그래서 10월에 나타난다. 그때 과일과 곡식이 쏟아져 나온다. 가장 높은 하늘이란 말은 가장 깨끗한 하늘이란 말의 시각적 표현이다. 깨끗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보이는 것이다.

 

하늘이 높을 때 등장하는 곤충 대표는 고추잠자리다. 고추잠자리는 빨갛다. 하지만 고추잠자리가 다 빨간 것은 아니다. 빨간 잠자리는 수컷이다. 여자 고추잠자리는 노랗다. 덜 자란 수 잠자리도 암 잠자리처럼 노랗다. 곤충이나 동물도 성숙해지기 전에는 여성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노란 잠자리가 다 암컷인 것도 아니다. 원래 누런빛을 갖고 태어난 잠자리들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된장잠자리라고 부른다. 색깔이 된장처럼 노랗기 때문에 된장잠자리로 부르는 것이지 우리나라 고유의 잠자리이기 때문에 된장잠자리로 부르는 건 아니다. 누런 색깔의 된장잠자리들 고향은 동남아시아다. 해마다 봄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듯이, 해마다 여름이면 저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된장잠자리들이 우리나라로 날아온대나 어쩐대나.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도 일본으로도 갈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멀리 여행할 수 있는 곤충, 된장잠자리의 항공 비결은 가벼운 몸과 넓은 날개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 열심히 날갯짓을 하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유유히 이동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가을 하늘은 높지만 가을 땅은 낮다. 땅들은 습기를 잃고 전답과 수목의 길들은 문드러진다. 모든 결실을 내놓고 헐렁해지는 가을 땅의 입장에서는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오는계절이다. 한번 떠나간 애인이 꿈에서도 되돌아오지 못함을 깨닫는 것도 결국 가을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열심히 먹고 살을 푹푹 찌우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이상, 가을이 왜 고독이냐고 묻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답이었다.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