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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농기계 유통 ‘매듭’ 농협이 풀어라

올해 농기계입찰 개선 ‘눈 가리고 아웅’격


농기계 유통 현장의 가격왜곡과 혼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최저가입찰이 폐지돼야 한다는 유통업계의 요구가 높았다.


올해 농협은 최저가 입찰로 인한 폐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표방해 업계의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4일 실시된 농협 농기계은행 사업용 트랙터 입찰 결과에 대해 농기계 유통업계는 최저가입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달 진행된 트랙터부속작업기 수의시담 경과에도 유통업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농협이 농기계에 대한 최저가 강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농기계 유통의 뿌리 깊은 농협 의존성
한국 경제 발전의 특이성 중 하나가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정책사업을 끌고나갔다. 농업에서는 농협이 중심이 돼왔다. 정책시행에 따르는 자금의 집행이나 농촌 구석구석까지 펼쳐야 하는 농정과 사업에서 읍·면단위 지역조합, 시군지부와 지역본부, 이들 전체를 통괄하는 중앙회 등 농협의 조직력이 유용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펼쳐져왔던 농업기계화 관련 정책들 역시 농협이 중심이 돼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농업기계화 초창기에는 농협에서 일괄적으로 농기계를 공급한 적이 있었고, 농기계 원가조사를 통한 농기계가격 결정의 업무를 이행한 일도 있었다.


일부 농기계의 공급을 통해 가격을 통제하고 동시에 농민들에게 사후봉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행정조직에 버금가는 조직체인 농협을 통해 정책사업을 펼치는 것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금의 관리와 집행도 농협의 몫이 됐다.[도표1]



현 국내 농기계유통의 17%를 점유하고 있는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대통령 지시에 의해 시작됐다. 농협은 이 사업에 필요한 농기계의 많은 부분을 업체대상 입찰에 의해 확보하고 있다. 현재도 ‘리스’의 성격으로 농기계를 농민에게 공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반 대리점과 유사한 ‘판매’의 형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농기계판매에 존재하지 않는 각종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


2010년부터 1조 이상의 자금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한 주력 농기계가 매년 1000대 이상이다. 트랙터가 가장 범용적인 농기계이면서 시장이 크기 때문에 농기계은행사업에서 트랙터에 대한 사업규모가 가장 크다. 특히 농협이 2010년부터 농기계은행사업용 트랙터를 최저가입찰로 확보해 오면서 시장에 대한 파급력이 나날이 높아졌다.[도표2]


농협의 최저가입찰 강박과 그 폐해
농협중앙회에서 매년 시행해온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최저가입찰은 그 부작용이 매우 심각했다. 농기계업체는 무엇보다 현금의 순환이라는 장점 때문에 악조건에서도 참여를 거부하지 못했고, 그 결과 권장소비자가격의 절반 내외까지 낙찰 가격이 하락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단지 농협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획기적인 성과였다. 


농협의 최저가입찰은 기업이 판매활동으로 인한 적정한 수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 이상의 부작용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농기계산업을 피폐화시킨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농협의 최저가입찰에 대응하기 위해 농기계 회사들은 얄팍한 모델변경과 가격 인상, 품질경쟁보다는 가격경쟁으로 몰입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러는 동안 일본 농기계들의 시장잠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농기계 대리점들의 경영악화 등 후폭풍이 몰려왔다.


반대로 농협중앙회는 낮은 가격에 확보한 농기계를 지역조합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윤활유 지원, 우수 지역조합 포상 등의 수혜도 등장했다.


이렇게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최저가입찰이 내포한 문제의 심각성이 농기계산업 전체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시정요구가 이어졌다. 특히 실질적으로 농기계 판매활동의 경쟁자이면서 피해자인 농기계 유통인들의 반발이 컸으며 이런 문제인식은 지난해 8월 대리점조직인 전국농기계유통협동조합(이사장 서평원) 출범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 농기계기업들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농협까지 문제를 수용하게 되면서 ‘최저가입찰 폐지’에 대한 중론이 모아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4일 치러진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용 트랙터 구매입찰의 결과에 대한 업계의 분석과 향후 전망이 나오고 있다.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그동안 야기된 농기계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매우 미약한 처방이라는 의견이 많다.


합당한 예정가격의 조건 충족됐나 
이번 농협의 농기계입찰 결과는 농기계은행사업용 트랙터를 LS엠트론과 대동공업이 각각 588대, 585대씩 반분한 것이다.(소형·중형·중대형별 결과는 [도표3]) 농협이 “최저가입찰을 하지 않고 예정가격 이내에 들어온 업체 모두에게 낙찰의 기회를 주기 위해 제도를 개선했다”고 했지만 동양물산과 국제종합기계는 4~5회까지 이어진 입찰 과정에서 중도포기하거나 탈락했다.



관련 전문가는 “올해 농협 농기계 입찰의 가장 큰 특징은 예정가격을 기준으로 낙찰이 이뤄졌다는 것과 2개 업체가 중도에 응찰을 포기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모든 입찰제도와 마찬가지로 늘 예정가격은 있어왔다. 올해 달랐던 점은 입찰참여 업체 모두가 낙찰되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강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올해도 문제는 ‘가격’이었다. 농협이 예정가격이라는 커트라인 안으로만 들어오라고 손짓했지만 ‘눈가리고 아웅’식의 개선이었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농협 관계자는 올 입찰 예정가격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한 시장가격 등의 기초자료와 원가변동요인이 참작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는 “현실적인 예정가격이 되기 위해서는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입찰자들로부터 1차 응찰가격을 받고 이것을 기준으로 평균한 다음 자체 원가조사 결과를 반영해 현실적인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내부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도 예정가격의 기준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그동안 농협 입찰을 둘러싼 지적 중 하나는 농기계 시장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있었다. 농민들의 선호도가 가장 중요한 지표가 돼야 하는데 농협이 자신의 수익을 우선해 ‘저가’ 위주로 진행했다는 비판이다. 현재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재고가 누적되는 현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리점에겐 아주 불공정한 게임
이처럼 기존 방식에서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농협 농기계입찰로 인해 그동안 야기된 문제 이상의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관련업계는 걱정하고 있다.


우선 당장 농기계 가격표시제를 실시해야 하는 농기계 대리점의 입장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수준의 가격을 표시하느냐가 첫 번째 현실적인 고민이다. 


농기계회사와 대리점의 실질적인 계약에서 을이 되는 대리점의 경우 자율적으로 농기계가격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회자되는 바에 의하면 이전 권장소비자가격의 약 40% 낮은 수준에서 농기계은행용 농기계 공급가격이 결정되었다고 하면, 과연 이렇게 낮은 가격을 반영해서 농기계대리점이 농기계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40% 낮은 가격에 인수받은 농기계를 최종 농민들에서 20% 정도 낮은 가격으로 공급한다고 추정할 경우, 대리점들은 약 80%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대리점이 사후봉사까지 책임지며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농기계은행용 농기계에 대한 사후봉사 책임이 농협이 아닌 농기계회사에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너무나도 불공정한 게임이다.


게다가 농기계 대리점들은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 중고농기계를 인수하는 게 관례인데 여기에서의 자금운용 손해 부분은 어떻게 커버하느냐이다. 이 역시 농협 지역조합 공급자들에게는 없는 부담이다.


결국 농협 농기계 최저가입찰은 1차적으로 농기계 대리점들의 경영 악화에 이어 부실한 사후봉사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뿐 아니다. 그간의 최저가입찰로 인한 농기계 시장왜곡의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 이어질 전망이다. 농기계 가격의 인상, 업체들의 농기계 품질 개선을 위한 노력 회피, 국산 농기계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 미약으로 인해 일본 농기계의 국내 시장 잠식 확대 등의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업계의 우려가 높다.


국산 제조업계 일부에서는 농기계원가조사를 통한 일본 농기계의 시장진입 저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이것은 당초부터 실현이 어려운 조건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농협은 경제사업 수익원에 목마른다
농기계입찰 분석의 포커스를 농협 쪽으로 돌려보면, 지금껏 농기계 유통과 가격혼란의 근원이라는 질타 속에서도 농협은 최저가입찰을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 신용부분와 경제부분이 하나로 움직일 때 신용으로부터 경제사업 운영에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경이 분리된 이후 경제사업을 통해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농협의 경제사업은 수익사업으로 변환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농자재 관련사업에서의 수익이 농협의 중요한 수익원이 된다. 농민들에게 저렴한 농자재를 공급한다는 명분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농협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불이해를 떠나 농기계 시장왜곡의 문제가 장기화될 것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다.


토종 농기계산업이 살아야 농업도 산다
유통의 본질은 상품이 생산자에게서 소비자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을 것이다. 적정가격에 최소의 비용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여기에서 적정가격이란 생산자의 적정이윤의 보장과 기술개발, 품질 개선의 여지가 포함돼야 한다. 사실 누군가의 시장 개입이 없다면 자연스런 시장경제의 흐름 속에서 달성될 수도 있다.


가격의 왜곡과 혼란이 이어진다면 공급자의 쇠퇴와 제품 품질의 저하와 함께 무엇보다 큰 문제인 소비자의 불편과 불만이 증대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견지에서 현재 농협의 농기계은행사업용 농기계의 최저가입찰이 미치는 농기계유통에 대한 폐해가 심각하다.


또한 그 출구도 잘 보이지 않아 정부와 관련기관과 기업 등 이해 당사자들의 상생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궁극적으로 우리 농업과 농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우량한 토종 농기계기업이 좋은 제품을 적정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우리 농기계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적어도 70% 선의 시장 몫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 농기계산업 전문가의 고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국산 농기계에 의해 국내 농기계시장이 장악되고 이들에 의한 ‘가격농단’이 있을 때 이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파생될 우리 농민들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농협의 지금과 같은 가격조정 능력 또한 무의미한 것이 된다”고 꼬집었다. 토종 농기계기업이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을 때 외국계기업에게 농협의 최저가 입찰에 참여하라고 한들 그럴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 농기계산업과 유통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기 위해 정부와 농협중앙회, 농기계기업의 각성이 요구된다.


이은원 l wons@newsf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