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전기신호를 활용한 기술이 작은 면적에서 더 많은 농산물을 더 건강하게 생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작물 전기신호를 모니터링 해 스트레스를 미리 탐지하거나 물, 양분 등 자원을 최적화하는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가뭄이나 병충해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하는 식물 전기신호를 분석하고, 이를 패턴화하여 감지하는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수동적이며 정적인 것처럼 보이나 이들의 역동성은 동물과 견줄 만큼 뛰어나며 정교하다. 식물은 고착된 대신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환경 변화, 해충 공격, 기계적 스트레스 등 외부 자극에 반응해 세포 내에서 생성되는 전기신호가 대표적인 예다.
식물에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칼슘, 포타슘, 소듐 등 이온이 세포와 세포 사이를 이동하면서 안팎 전위차가 생기고, 이는 일련의 전기 흐름을 만들어 조직 전체에 빠르게 전달돼 식물의 반응을 끌어낸다.
19세기 찰스 다윈과 버든-샌더슨은 식물이 전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의견을 처음 내놓았다. 그리고 현재, 미세전극 등 정밀 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식물의 전기신호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가뭄이나 병충해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하는 식물 전기신호를 분석하고, 이를 패턴화 하여 감지하는 시스템이 개발됐으며, 전기 자극으로 식물 생장은 물론 특정 유전자 발현을 촉진해 고부가가치 화합물의 생합성을 유도하는 데도 성공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작물 전기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해 스트레스를 미리 탐지하거나 물, 양분 등 자원을 최적화하는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전기신호를 포함한 여러 식물 반응을 기반으로 작물 건강 상태를 정밀히 추적하는 모니터링 기술은 정밀 농업의 핵심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생리적 현상 넘어 인간-자연 소통 언어로 발전
식물의 표면 구조는 불규칙하며 약한 전기신호를 안정적으로 감지하기 위한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최근 싱가포르의 난양공과대학교 연구팀이 개발한 열가소성-젤 기반의 전극은 다양한 식물 표면에 안정적으로 붙여 장기적인 정보 수집이 가능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위스 Vivent사가 개발한 바이오센서는 식물 줄기에 전극을 붙여 내부 전기신호를 감지하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해석해 스트레스가 시각적 증상으로 나타나기 전에 식별한다. 린셰핑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가 함께 개발한 다중-전극 어레이 기술은 음식을 덮는 랩만큼 얇은 필름으로 구성돼 손상 없이 식물 잎에 붙여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서울대 연구진이 ‘전자피부’ 기술을 식물에 적용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식물 건강 측정부터 감염병 진단이 가능한 ‘식물용 체성분분석기’를 구현했다. 인천대에서는 미세전극을 토마토 줄기에 붙여 실시간으로 이온 농도를 측정하고 식물 상태와 스트레스 종류를 진단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으로 전 세계가 식량안보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 식물의 전기신호를 활용한 기술은 작은 면적에서 더 많은 농산물을 더 건강하게 생산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식물의 전기신호는 단순한 생리적 현상을 넘어 인간과 자연 간 새로운 소통의 언어로 발전할 가능성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인 연구로 식물의 전기신호를 해충이나 병 발생 예측, 폭우, 고온 등의 불량 환경에서의 작물 생육 모니터링, 생명공학을 통한 스트레스에 강한 식물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농업생태계를 보다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고 소비자에게는 더 건강한 농산물을 전달할 수 있는 미래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