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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 에세이] 김장 상념 셋

-알다가도 모를 일들


#1 루틴
루틴이란 말이 있다. 작년과 올해, 우리를 즐겁게 해준 류현진 때문에 알게 된 용어인데 의외로 어려운 말이다. Routine,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비슷한 뜻이긴 하다. 류현진은 팀의 루틴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취한대나 어쩐대나. 미국 야구계에서는 이 루틴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그것을 벗어난 일종의 일탈적 방식을 류현진에게만 허용했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열심히 그 뜻을 찾아 봤더니, 찾아볼수록 의미를 알기가 어려워져 갔다. 컴퓨터, 의학, 스포츠, 댄스, 화학… 별의별 분야에서 다 전문용어로 쓰이고 있었다. 규칙, 명령, 반복, 틀 등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명사인 듯 형용사인 듯 품까지 헷갈렸다. 심지어 옥스퍼드 영한사전에 등재된 일반적 의미 세 가지는 같은 의미인 것 같은데 느낌이 영 다르다. 

 

Routine
1. 〔명사〕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2. 〔명사〕 못마땅함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3. 〔형용사〕 정례적인


1의 의미는 일반적이면서 긍정적, 순리적인 느낌을 주고, 2의 의미는 왠지 부정적이고 답답한 인상을 주며 3의 형용사는 류현진이 왜 이를 거부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완전 주관적 해석이다).


#2 김장
지금은 김장 시즌이다. 김장은 김치를 대량 담그는 일이다. 배추를 산다, 무를 산다, 소금과 고춧가루와 기타 등등 양념을 산다, 그것들을 씻고 다듬고 절이고 버무리고 담그고 저장한다. 간단한 듯 복잡하고 쉬운 듯 어렵다. 연중 한 번, 반드시 거쳐야 하는 김장은 1년 생활 속의 루틴이 분명하다. 물론 점점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년 논하는 배추 값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 배추 한 포기 값은 배춧잎 한 장을 오르내린다. 단기간에 올랐다 내리고 내렸다 오르기를 반복하는 배추 값은 한때 도박보다 박진감 넘치는 투기 상품이기도 했다. 가까운 선배도 배추 장사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집 한 채를 장만했었다. 흔하고 흔한 배추로 어떻게 큰돈을 만지나 의아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세상의 루틴을 활용한 기술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그렇고, 배춧잎은 1만원의 별칭이고 배추 잎은 이파리다. 배춧잎을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배춧잎
1. 배추의 잎    2. 만 원짜리 지폐를 속되게 이르는 말


#3 냉장고
어떤 회의에서 식품 시장의 미래를 논하고 있었는데 한 마케터가 이런 제안을 했다. 식품을 개발하려면 전자회사와 친해야 한다, 냉장고 개발자를 회의에 참여시키자. 앞으로 신선식품은 냉장고의 진화와 동행하게 될 것이니 지금 개발 중인 신형 냉장고를 상상하며 신상품을 개발하자. 기상천외한 그의 제안은, 회의실 대장의 “그러다 망한다”는 한마디로 단숨에 제압되었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지 말라!


김치냉장고를 보면 누가 옳으며 그른지 알다가도 모르게 된다. 김치냉장고의 효시로 알려진 딤채가 등장하기 10년 전에 금성사(지금의 LG)의 금성김치냉장고가 출시됐었다. 야심만만 히트를 예상했지만 쫄딱 망했고, 전자회사들은 김치냉장고에 고개를 돌렸다. 10년 뒤 등장한 딤채란 브랜드의 김치냉장고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줄 그들은 몰랐다. 역시 시장은 타이밍 싸움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한 일들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세상의 변화가 10년을 앞당기고 있는지 100년을 앞당기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날마다 변혁인 시대를 살아가며 여전히 우리는 어리둥절 루틴에 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