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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農에세이] 멧돼지를 위한 변명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돼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황당한 시대다. 영문도 모르고 죽고 묻히는 현실이 억울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긴 돼지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신이나 다름없으니, 착한 돼지 입장에서는 ‘신의 뜻에 따라 기꺼이 감내할 죽음’이요, 반골 돼지 입장에서는 ‘무너진 자존을 위해서라도 꽥 소리는 질러야 하는 상황’이다. 옆의 돼지나 옆 동네의 돼지가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순응하는 돼지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돼지는 아무리 강력한 바이러스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강하다며 반항할 수도 있겠다.

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일부 과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바보야, 문제는 돼지의 체력이야.”
일부 반골 돼지들의 주장이다.
“우리의 체력을 이처럼 허약하게 만들어 놓은 ‘신(인간)’들은 멀쩡한데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가?”


멧돼지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더욱 황당한 사태요, 사변이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쫓기고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조상들이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바이러스가 돌고 돌아 중국을 거쳐 북한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이유란다. 사실인지 아닌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인간들은 그렇게 판단된다며 휴전선 인근의 멧돼지들을 수색하며 총질을 하고 있다. 갑자기 닥쳐 온 위기가 전쟁보다 무섭고, 먹잇감을 위해 사냥하던 과거의 방식보다 살벌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역사적 경험치와 판이하게 다른 사태가 낯설고 두렵다.

그 와중에도 착한 멧돼지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먹이사슬의 굴레 속에서 투쟁하듯 사는 게 삶, 먹이사슬 최고층에서 죽인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어느 세상에든 존재하는 반골 멧돼지의 반론도 들어볼 만하다.


“바보야, 우리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야. 너희가 말한 대로 북한 멧돼지들로부터 전염됐다고 치자. 우리가 죽으면 북한 멧돼지들이 우리 땅으로 내려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우리가 방어함으로써 (바이러스에 감염된) 북한 멧돼지들이 못 내려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생태학자와 함께 장기간 여행하며 멧돼지의 습성을 공부했다. 멧돼지는 영역 동물이다. 자기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동물이다. 먹을 것이 보장되면 함부로 남의 영역에 발 딛지 않는다. 멧돼지는 잡식동물이다. 자연이 풍성하면 굶어죽지 않을 수 있고 인간들의 땅에 굳이 발딛지 않는다. 결론. 멧돼지를 인간의 땅에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방역이다. 굳이 산속 깊숙이 뒤져가며 멧돼지 소탕작전을 벌이다 개체수가 확연히 줄어들면 북한 멧돼지들의 남침이 시작될 것이다. 북한보다는 남한이 먹을 것이 많음을 멧돼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DNA와 가장 흡사한 동물이 돼지라는 사실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최초의 인간 탄생을 돼지와 원숭이의 우연찮은 교접으로 인한 돌연변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당황할 때 인간들은 대부분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 돼지와 멧돼지들이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꽥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