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유민의 農에세이]

양력과 음력 사이, 약력과 이력 사이

설이 시작되기 직전, 가까운 후배가 출산 소식을 전해 왔다. 축하 인사를 전했더니 뜻밖의 고민을 털어놨다.

“2019년에 태어났으니 황금돼지 띠잖아요. 그런데 설이 지나지 않아서 개띠라고 하네요. 어떡하죠?”

오옷, 놀라운 질문이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띠는 당근 음력 기준이니까 개띠지. 답해 놓고 한참 뒤에야 그 고민의 저간을 헤아리게 되었다. 세상이 온통 황금돼지 해를 축하하며 돈 보따리 굴러들어올 듯 호들갑을 떠는 터에 며칠 상관으로 개띠가 된 아쉬움의 토로가 아닐까.


양력과 음력 사이, 연말연시 애매한 시기가 생일인 사람은 늘 나이와 띠의 불일치 속에서 자란다. ‘개띠인지, 돼지띠인지’, ‘뱀띠인지, 말띠인지헷갈린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언젠가 20~30대 후배들과 저녁을 먹는데 띠는 음력으로 결정되는 건가요?” 하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세상에, 띠는 음력으로 결정되는 걸 몰랐단 말이냐? 하고 되묻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마치 신성일이 우리나라 최고 배우였던 걸 모르느냐?”라는 놀라움과 비슷한 것 같아서다. 알고 보니 비슷한 게 아니라 같은 것이다. 중장년 세대는 음력과 양력의 기준이 명확하며 띠가 중요한 운명의 가늠자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초-청년 세대에게 그런 것들이 인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연말부터 최근까지 사회 각계의 모임에서 승진과 인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어느 유통기업 부장에게 슬쩍 인사 방향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한 해 실적은 괜찮았는데그것이 어떻게 반영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교육 들어갈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빈자리를 누군가 채워야 하니까 곧 인사에 반영되겠죠.”

실제 인사이동이 일어난 곳에서 승진을 하고 못하고에 따라 술자리 분위기가 달라짐은 대부분 비슷하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가령 어떤 승진 인사는 냉소적 평가가 붙기도 한다. 한 기업에서 이사로 승진한 사람의 말이다.

축하받을 일이 아니에요. 이제 나갈 준비 하라는 의미인걸요.”

지위가 높아졌어도 힘이 실리지 않고 권위가 서지 않는 시대라며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굳이 의미를 갖자면 몇 푼어치의 돈과 최종 직함이 뭐냐는 위로용이랄까요.”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횡행한다.

실적이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을 계량화한 것도 아니고, 인사권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사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인사란 무엇이고, 인사는 왜 하는 것일까. 인사는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공동사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일의 의욕을 높여 주고, 조직의 미래를 건강하게 유도하기 위한 역동적 조치이다.

승진 행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사권자의 간절한 부탁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잘해준 데 대한 감사,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달라는 바람이 실려 있는 것이다. 작금의 인사에 그런 무게가 실려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연 세월이 흘러 50, 100년이 지난 뒤에 ‘2010년대 한국 사회의 연말연시 인사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든다.

누구와 친한가, 누구와 동창인가, 누구와 동향인가 등등이 인사의 중요한 기준이었던선진국 행세를 하던 원시시대.’

최근 십여 년 사이, 이상한 인사들이 너무 많아서였는가. 공교롭게 시골로 내려가는 이들, 그 중에서도 능력 뛰어난 인물들의 귀농 귀촌 현상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승진과 낙마 중 무엇이 더 나은지 음미해 보라는 질문?

 

유민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