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EU)에서 만코제브가 영구 퇴출됐다. 최근 유럽 일반법원은 유럽위원회가 내린 만코제브(mancozeb) 승인 갱신 거부 결정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위원회의 판단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만코제브가 EU 시장에서 영구 퇴출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은 하나의 농약 성분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넘어, 유럽 농약 규제 철학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만코제브는 수십 년간 곡물·과일·채소 재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다중 작용성 보호살균제로 농업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병원균의 내성 발생 가능성이 낮고, 가격 대비 효율이 뛰어나 농업 현장에서 ‘기본 방제 수단’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번 퇴출은 효능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내분비계 교란 가능성, 환경 중 대사산물의 잔존성 등과 관련된 과학적 불확실성이었다.

만코제브에 대한 EU 규제 체계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위험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불확실성 그 자체를 시장 배제의 충분한 근거로 삼고 있다. 유럽 일반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유럽위원회가 사전 예방 원칙을 적용할 때 폭넓은 재량권을 가진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사법부의 역할은 절차적 정당성과 명백한 불합리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칠 뿐, 과학적 판단을 다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로써 EU에서 만코제브의 법적 운명은 사실상 결정됐다. EU 규제 틀 아래에서는 한 번 승인 갱신이 거부되면 복귀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데이터가 제출되더라도, 규제 당국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시장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안전이 끝까지 증명되지 않으면 허용하지 않는다”는 유럽식 규제 논리가 명확히 확인된 셈이다.
한국 시장에 미치는 파장?…수출 과채류에 사용 불가
EU의 이번 판결은 한국 농약 시장에도 적잖은 함의를 던진다. 다만 충격의 형태는 EU와 다르다. 한국에서 만코제브는 이미 제한처분 농약으로 관리되고 있어, 당장 EU처럼 전면 퇴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사용 조건의 추가 제한 △잔류 관리 강화 △혼합제 포트폴리오 조정과 같은 점진적 압박이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떠오를 수 있다.
좀 더 민감한 변수는 수출 농산물의 잔류 기준이다. EU는 만코제브 승인 갱신을 거부한 이후 관련 잔류허용기준(MRL)을 엄격하게 재검토해 왔다. 이는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했더라도, EU 수출 단계에서는 통관 거절·반송 위험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과채·과수 등 EU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에서는 산지 생산단계부터 ‘EU 기준 방제’가 필수적 선택지가 됐다.
보호살균제 시장 재편… ‘값싼 약’의 의미가 바뀐다
만코제브는 오랫동안 광범위 병해를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보호살균제로 활용돼 왔다. EU발 규제는 국내에서도 대체 살균제 수요 확대, 병해별 로테이션 강화, 정밀 방제 프로그램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농약 가격을 좌우하는 요인은 단순한 원가가 아니라 규제 리스크와 수출 통관 비용이 주목받는다. 만코제브는 ‘값싼 범용 농약’에서 ‘관리 비용이 큰 성분’으로 성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 철학·제도 해석’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
만코제브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농약의 생존 여부는 더 이상 효능이나 시장 수요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규제 철학과 제도 해석이 제품의 수명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유럽은 불확실성을 제거 대상으로 삼았고, 그 선택은 글로벌 농약시장에 파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은 효과가 있어도, 오래 쓰였어도,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시장에 설 자리가 없다는 강력한 경고로 읽힌다. 결국 유럽의 만코제브 영구 퇴출은 한국 농약시장이 마주한 미래의 예고편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