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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사과문 뒤 숨은 권력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쇠스랑] 차재선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농협중앙회에 대한 특별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하자, 농협은 곧바로 사과문을 내놓았다. “국민과 농업인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는 문장이 사과문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익숙한 표현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과문은 ‘유감’과 ‘송구’의 언어로 가득했지만, 무엇이 잘못됐고, 그 책임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감사 결과에 대한 평가도, 내부 통제 실패에 대한 자성도 희미했다. 사과는 있었지만, 책임의 언어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농협 비위가 드러났다”며 △부적절한 기관 운영 등 총 65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부정·금품선거 관련 문제 등 추가로 범정부합동감사 실시 △농협 선거제도 및 지배구조 등 제도개선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관련기사 2026.01.09.자 인터넷판 ‘농협 비위, 부적절한 인사·조직운영, 허술한 내부통제장치 드러났다’》


농협은 감사 중간결과 발표 직후, 일련의 인적 조치를 함께 내놓았다. 강호동 회장이 농민신문 사장직과 농협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전무와 상호금융대표이사·농민신문사 사장 등 일부 주요 임원들도 직을 내려놓았다.

 


또한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조직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겉으로만 보면 책임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선 듯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 조치들이 사과문의 연장선에서 나온 ‘책임의 결과’인지, 아니면 사태 수습을 위한 관리적 선택인지는 분명치 않다. 인사 조치와 위원회 설치는 있었지만, 그 판단 기준과 책임의 경계는 설명되지 않았다. 사과문 어디에도 “누가, 어떤 판단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농협은 스스로를 ‘농업인을 위한 조직’이라 규정한다. 그렇기에 이번 사안은 단순한 행정 미비나 내부 관리 문제로 축소되기 어렵다. 조합원과 농업인의 신뢰 위에서 작동하는 조직이, 그 신뢰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과문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문장도 담겼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한도, 실행 방식도 제시되지 않았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개혁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위원회가 무엇을 바꾸고, 언제까지 결과를 내며,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다. ‘설치’는 선언됐지만, ‘책임 구조’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관련기사 2026.01.13.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대국민 사과문’》


더 큰 문제는 이 사과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조차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과의 대상은 ‘국민과 농업인’으로 포괄됐지만, 정작 현장에서 농협의 의사결정에 직접 영향을 받는 조합원과 농업인에게 어떤 변화가 돌아갈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사과가 위를 향한 형식적 절차에 머문다면, 현장은 또다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농협은 공기업도, 순수한 민간기업도 아니다. 공적 기능과 협동조합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특수한 조직이다. 그렇기에 책임의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감사 결과가 ‘중간’ 단계라 하더라도, 조직 스스로가 먼저 책임의 언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인사 조치와 위원회 설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작이 모호하면, 변화의 끝은 오지 않는다. 이번 사과문과 후속 조치가 또 하나의 ‘의례적 대응’으로 남을지, 아니면 농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가 될지는 이제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