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제12대 총장이 이달 18일 취임식을 갖고 정식업무를 시작했다.
정현출 총장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농수산업의 미래를 창조해 나갈 정예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 최고의 농수산업 교육 기관을 경영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돼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 대학의 최상위 목표는 학생이 최고의 농어업 교육을 받아 졸업 후에 자립, 자조, 협동하는 농어업 인재로 계속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학교 행정부터 수업, 실습, 교내외 활동 등 모든 것을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장을 돕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출 신임 총장은 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수료했다. 행정고시 39회로 1996년 공직에 입문해 농림축산식품부 자유무역협정2과장(2006~2008), 경영인력과장(2009), 지역개발과장(2010), 농업정책과장(2014~2016), 식생활소비정책과장(2017),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기획과장(2017~2018), 주 제네바유엔사무처 및 국제기구대표부 공사참사관(2018~2021), 식품산업정책관(2021), 농업정책국장(2021~2022), 국제협력국장(2022)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현출 총장의 취임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 여러분!
저는 제12대 총장으로 임명받은 정현출입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농수산업의 미래를 창조해 나갈 정예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 최고의 농수산업 교육기관을 경영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어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먼저,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학 비전을 새롭게 하고, 교명을 변경하는 등 대학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 크게 기여하신 조재호 전임 총장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난 5개월간 총장 직무를 성실하게 대행하신 김승희 교무처장께도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총장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여러분께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할 것인지 말씀드리는 것으로 취임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말씀을 나눌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우선 농수산업의 특성과 의의, 그리고 우리 한농대가 한국의 농수산업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농수산업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존재해온 유서깊은 산업입니다. 지식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농수산업을 운영하는 겉모양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즉, 자연이 주는 한계와 가능성 사이에서 인간이 번성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고 나누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진다 해도 인간은 무언가를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식품을 공급하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농수산업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중요성과 의의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생명을 지키는 산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농수산업은 가장 중요한 분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근대 과학 기술 발전에 힘입어 농수산업 생산력이 크게 높아져 인류가 배고픔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자 역설적이게도 농수산업의 중요성을 잊어버리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고픔을 경험한 세대는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고, 돈만 충분히 있으면 먹을 것을 언제든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에서 식품 공급이 풍부해졌다는 사실이 농수산업의 본질이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이 있고, 심지어 선진국에서도 기후변화나 자원 공급 애로, 경제나 정치 불안으로 인해 먹을거리의 공급에 위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농수산업의 문제는 언제나 함께 하는 숙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최근의 일이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경제가 대폭 개방되고 연결되면서 많은 나라가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인구도 급증했습니다. 이전에는 비교적 좁은 지역이나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지던 경제 활동이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식품의 경우도 해외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인구 규모에 비해 국토와 농지가 좁기 때문에 필요한 식품의 상당부분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농수산업의 비중이나 농어업인의 소득수준도 정체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농수산대학교는 90년대 중반 전세계적으로 농산물 무역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던 시기에 우리나라 농업에 불어닥칠 큰 변화와 예상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당시 농업계 지도자들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무역환경 변화가 한국 농업의 몰락을 부를 수도 있다는 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기본적인 식생활을 안정시키려면 유능하고 창의적인 후계농업인을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가 학교 재정과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농업 현장에서 새로운 농업기술 적용을 선도하고 농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정예 농업인을 육성한다는 매우 독특한 목표를 가진 우리 대학이 1997년에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세계의 수많은 농업학교 중에 우리 한농대와 같이 독특한 설립 배경을 가진 학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농대가 다른 산업전문대학에 비해 독창적인 학사제도를 가지게 된 것도 바로 당시의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개교 후 25년 동안 학교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처음에 농업분야 6개 학과 240명 정원으로 시작했는데 이후 수산분야도 추가되고 학생수도 늘어 19개 전공 570명 정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졸업생도 6,475명을 배출하여 전국의 농어업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형과 내실 양 측면의 성장은 그동안 학생 교육과 학교 운영을 위해 노심초사한 교수진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애쓴 교직원들의 공로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자녀를 농어업인으로 길러보겠다는 귀한 결심을 하신 학부모들의 성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도 꾸준하게 투자를 확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농어업과 한농대가 당면한 여건과 과제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농어촌은 급격한 고령화 진전과 출산율 하락의 충격에 가장 먼저 노출되어 있습니다. 40대 이하 경영주가 점점 드물어지는 등 인구구조가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비료, 농약, 전기, 석유, 농기계 등 생산요소의 가격과 인건비도 계속 오르는 추세입니다.
한편, 기후변화, 디지털 사회 심화, 소비자 수요 다양화 등 경영 여건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사회 경제 전반의 변화는 모든 나라가 비슷하게 겪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경우 그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올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농업혁신을 선도할 청년농업인 3만명 육성’을 농정공약과 국정과제로 선정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한농대가 개교한 1997년에 농림부에 들어와서 유통, 국제, 농정, 농촌, 식품국 등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농업정책을 다루어 왔습니다. 대통령 비서실과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한농대와 직접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농촌진흥청 산하에서 농림수산식품부로 소속을 옮길 때, 경영인력과장으로서 이관 작업을 담당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당시 저와 만난 경험이 있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정부 출범과정에서는 농업정책국장으로서 우리나라 농어업 미래를 책임질 정예인력을 양성하는 한농대의 역할과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청년 농업인 육성대책을 잘 살펴보면 한농대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만든 내용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바로 지금 이 시기에 한농대가 한국 농어업의 미래를 위해 한 단계 도약해야만 하는 절대적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감히 총장의 직무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농대가 그동안 이루어온 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답습하는 수준으로는 크게 부족합니다. 농어업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가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한농대는 다른 대학과는 구별되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문제의식에서 다시 출발합시다. 우리 학교는 단순히 학사 학위를 얻기 위해 들어오는 학교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 학교가 여느 대학과 유사한 학교라면 모든 학생에게 전액 국비로 학비와 숙식을 제공하는 특별한 혜택을 줄 이유가 없습니다. 영농영어 의무기간을 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2학년 실습과정을 운영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수진으로 굳이 현장 지도 경험이 있는 분들을 모셔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 설립을 위한 근거 법률을 별도로 만들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업무를 시작하면서 우리 한농대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저와 함께 우리 학교의 설립 목적을 다시금 마음에 상기하고 이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를 위해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애로나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각자가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여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적극적 자세를 가져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총장인 저부터 앞장서서 이러한 다짐을 실천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저는 다음 네가지 원칙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려 합니다.
첫째, 우리 학교의 최상위 목표는 학생이 최고의 교육을 받아 졸업 후에 자립, 자조, 협동하는 농어업 인재로 계속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즉, 학교 행정에서부터 수업, 실습, 교내외 활동 등 모든 것을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장을 돕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직원의 평가 기준도 이를 중심으로 재편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는 열린 생각과 행동 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결코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과거의 선례 등에 갇혀있는 우물안 개구리가 되면 안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는 것보다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과거에도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하자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학교 밖에 있는 분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우리의 안목을 크게 열어나갑시다.
셋째, 저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권한과 책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의 경우 총장으로서 학교행정을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반면, 교직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여러분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교수는 담당 과목을 설계하고 이끌어 나가는 권한이 있는만큼 학생들에게 유익한 수업을 제공하고 성장을 도울 의무가 있습니다. 이 시간 이후 우리 모두는 각자 주어진 권한과 책무가 어떤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학교 구성원간에 신뢰와 존경을 담아 바라보고 대화하겠습니다. 우리는 한국 농어업 발전을 위한다는 큰 뜻에 봉사하는 동료입니다. 하지만 역할과 성장 배경이 달라 일하는 중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의심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문제가 우리 관계를 망치도록 하면 안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돕고 존경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갑시다.
저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우리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대한민국의 든든한 농어업 인재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논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좋은 아이디어를 궁리해서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학교의 주인임을 잊지 맙시다. 저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