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에서 한국을 A그룹(아시아, 아프리카)에서 B그룹(선진국)으로 옮겨줬다고 한다.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선진국 그룹국가의 수는 32개국이다. 유엔무역개발기구에서는 회원국을 A그룹(아시아, 아프리카 98개국), B그룹(선진국 32개국), C그룹(중남미 33개국), D그룹(러시와, 동유럽 25개국)으로 구분을 짓고 있다. 구분의 기준과 의도는 모르지만 32번째 국가가 된 것이 싫은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적 새마을운동을 하던 기억이 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나라를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나라,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러한 노랫가락이 아침 일찍 마을에 울려 퍼졌었다.
마을 안길 청소하기, 나무 심기, 국기 게양대에 국기 게양하기. 기억이 생생하다. 조각으로 노는 땅에는 어김없이 농작물이 심겨졌었다. 뭔지는 몰라도 정부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모두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조국 근대화’를 강조하고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운 전 근대인으로부터 개조되어야 한다는 시절이 있었다. 선진 외국 자본과 문명을 받아들여서 변화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잔뜩 갖도록 한 시대가 있었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종자를 심고, 과거에 비해 우수하다는 농기계와 비료, 농약 등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것이 발전의 표징이었다. 농업의 생산성과 농산물의 생산량은 증가하였다. 그렇게 농업의 발전과 농촌의 근대화는 확대, 심화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이들은 20세기 후반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은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장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을 각종 농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사시사철 각종 농산물이 시설농업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고도의 최첨단 시설농업을 위해 정부에서 앞장서서 견인하고 있다. 농가단위 소규모 축산은 대규모, 전문화되었다. 이제 새마을운동을 후진국에 수출해야 한다고, 일부는 그리하고 있다.
한편 농촌의 피폐된 모습을 보면서, 지난 40~50여년 숨 가쁘게 발전을 추구해온 우리 농업인들의 입장에서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생각해 본다.
한때 농업에 종사했었던 사람으로서 농업인들은 지금 진정 원하는 ‘행복’을 근대화 이전에 비해 많이, 오랫동안 누리고 있는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설파가 옳았는가. 미래 농업은 희망적인가. 조금 더 참으면 염려하는 바는 사라질 것인가.
국가와 농촌 근대화…잃은 것도 많다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은 ‘산업역군’이라는 깃발 아래 도시와 공장에 들어갔고, 농촌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늙은 사람들만 남아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매년 농가소득이 늘고 있다고 말하지만 농업소득은 형편이 말이 아니다.
맑아서 물고기가 놀던 하천은 없어지고 안전하게 먹던 지하수, 샘물도 사라졌다. 농촌 공동체의 해체도 오래되었다. 마을에 어린이가, 시골에 학교가 사라졌다. 농업과 농촌은 선택지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다. 이게 발전의 결과인가.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에서 발전의 이면 속,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는 3농을 생각하면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조국과 농촌의 근대화, 농업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온 결과, 그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잘 될 것이라고만 하는 의식의 강제주입과 풍조, 정책을 보면서 과연 미래 3농은 희망이 있는 것인지.
농업인으로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소득을 얻을 수는 없는가. 청장년들이 노인들과 어울려 전통과 문화를 공유하는 세상은 아니 올까. 맑은 공기와 물, 자연환경 속에서 살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골목길을 뛰어 다니면서 노는, 그리고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마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폐교된 학교가 다시 아이들로 채워질 수는 없는가.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3농도 선진국인가. 선진국이 되려고 몸부림쳐 온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무엇을 위한 발전이고 선진국인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농촌에서 농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길인지. 그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 하는 것이 책무인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무엇을 탐구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