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경을 넘나들 때 사람에게 관세를 부과합니까?”
“???”
“우리에게 쌀은 사람과 똑같은 겁니다.”
약 20년 전, 쌀 관세화를 위한 무역협상이 한창일 때 이런 대화가 있었다.
세계 각국이 해를 거듭하며 길고도 지루한 협상을 이어나갔는데 결국 한국은 쌀 개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같은 질문과 주장을 한다면 먹힐 수 있을까 음미해본다. 십중팔구 ‘그게 뭔 소리람?’하고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싶다.
통상 관련 협상을 오래도록 했던 전직 관료와 식사를 하며 들은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손주들까지 장성한 ‘진정한 노인’이 되어 유유자적 살아가는 분이다. 과거에 겪었던 이런저런 외교, 협상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서 몇 가지 궁금증도 풀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통상에 관한 협상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삶에 민감한 것들이라 나라들마다 치밀하게 준비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늘 변수가 일어나지요? 제일 큰 변수는 어떤 걸까요?”
“사람이지요. 누구를 만나느냐, 그와 교감이 잘 되느냐, 이런 거.”
“오래도록 교류한 이들도 아니고, 나라를 대표해 나온 사람들과 교감이 가능한가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다는 의미. 그리고 또 쉽게 답했다.
“밥을 같이 먹으면 돼요. 어떻게든 따로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면 어려움들이 풀어지곤 했어요.”
아, 밥은 참 중요한 거군요. 치밀한 계획과 국가 차원의 전략조차도 무너뜨릴 수 있는…
#2
내 친구들 중 상당수는 벼농사를 짓는다. 중고교 시절 이맘때면 모내기 봉사활동도 나갔다. 어느 하루 전교생이 각지의 논으로 나가 모내기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모 심기를 (따라)하면서, 내가 심은 곳에서만 벼가 안 자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 했던 기억, 그런 와중에도 여학생을 꼬셔 교제(아, 오랜만에 사용하는 단어다)를 시작한 친구들… 케케묵은 쌀 협상 얘기를 들으면서 수많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막후의 사연을 그들이 알 리 없으니, 친구들을 대신해서 (전직 관료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쌀은 우리에게 사람과 같다고 주장한 그분, 농촌 출신이죠?”
노인은 노인답게 웃었다. 우리 시대에 농촌 출신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3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쌀 시장은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다. 외식보다 집밥 먹는 이들이 늘어났고, 밥맛 좋은 쌀을 찾는 소비자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대비한 듯이 새롭게 개발한 고급쌀, 특화 품종들의 인기가 제법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쌀의 전성시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쌀 소비 감소 시대를 오랫동안 겪어온 고뇌가 해소되는 것은 아닐까. 섣부른 예감에 그가 맞장구를 쳤다.
“맛있는 밥맛을 한번 느껴보면 계속 찾게 되죠. 코로나가 종료되어도 수입산 저가미를 사용하던 외식당 중 상당수가 국내산으로 돌아가게 될걸요?”
그렇다면 진정 쌀의 전성시대가? 창간 5주년의 영농자재신문의 전성시대도? 기대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벼농사 짓는 친구에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