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의 農 에세이] 보고 싶은 명자 누나

  • 등록 2020.09.13 01: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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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백그라운드

#1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한 번도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은 몇 차례 TV에서 본 바 있고,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비틀즈 이후 최대 사건이 될 것이라는 외신을 전해들은 적이 있고, 그들의 곡과 가사와 안무는 한국적이면서 범우주적이라는 평가를 보기도 했다. 그런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고 있으니 게으르거나 음악적 소질이 없거나, 입맛을 다시게 된다.


#2

작년 겨울, 한 술자리에서 방탄소년단과 방시혁과 방씨네 집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집안 내력을 들으며 갑자기 2NE1의 공민지가 떠올랐다. 방시혁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방정환 선생이라는 얘기나, 공옥진 할머니의 DNA가 손녀 공민지에게 이어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위한 수많은 동화와 작곡을 했던 배경을 죽 훑어보면서 이런 확신도 갖게 되었다. 방시혁의 방탄소년단은 방정환의 21세기형 활동 아닌가.

 

#3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두 명의 명자 누나가 있었는데 나이차는 서로 있었지만 둘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는 전교 1등을 다투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명자 님들은 착하고 똑똑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알고 봤더니 방시혁의 어머니 이름도 명자라고 하며 그분도 어렸을 때부터 1등을 다투었다고 한다. (방시혁의 어머니인) 명자 씨의 친구가 썼다는 글을 보니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으면 인생의 직무유기를 하는 것 같아서 여기에 (극히 일부를) 옮긴다.

 

#4

어느 날 명자 집에 갔더니 당시 고교 1학년생인 아들이 엄마 친구가 왔다고 기타를 들고 와 연주를 해줬다. 기타에 푹 빠져있었다. 명자도 걱정스레 말했다. 기타만 끼고 산다고. 그래도 명자 아들이어서 가끔 전교 1등을 하느냐고 물었다. 기타가 아니었으면 가끔을 빼고 물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 됐다. 기타를 끼고 살던 그 아들이 어느 대학에 갔을지 몹시 궁금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그 아들 진학 문제로 꼬장꼬장하신 할아버지께서 한 달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며 S대 법대를 고집하셨다고 했다. 판검사가 되는 게 흔히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 S대에 지원하면서도 법대를 외면하고 본인이 원하는 미학과에 합격했다. 그때 나는 내심 기타 때문에 공부가 좀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했었다.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들어준 것은 엄마인 명자였다.

-BTS를 키운 방시혁의 어머니 친구가 쓴 글

 

#5

나는 모든 사람이 유명해지고 출세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도 유명하지 않은 것이고 출세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해지고 출세한 모든 사람들이 가능하면 올바른 길을 걷기를 원한다. 이런 바람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특히 전교 1등을 다투며 살아온 능력자들에게 그런 바람을 갖는 것은 더욱 당연한데요원한 일인가 싶다. 1등 출신들은 그렇다 치고, 내가 좋아하던 명자 누나들은 어디서 뭘하고 살아갈까. 보고 싶다.


관리자 기자 newsfm@newsf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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