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의 농업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의 탁자 위에 오렌지 주스와 과자가 놓여 있었는데 행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최 측에서 오렌지 주스를 회수해 갔다. 주스를 먹으려던 사람이 “왜 줬다 뺐느냐?”고 항의했더니 주최 측에서 이렇게 답했다.
“지역 어르신들이 항의를 해서 바꿔 놓으려고 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우리 농산물 세미나장에 왜 외국 음료를 내놓느냐’는 항의가 있었고 나름 일리가 있어서 음료를 바꿔 놓는다는 얘기였다. 금세 다른 음료가 나왔다. 사이다와 콜라였다. 세미나는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이 보기에 오렌지주스는 외국 음료이고 사이다와 콜라는 우리 음료였던 것이다.
법률적으로 볼 때 국내산 음료는 ‘국내에서 제조한 것’이고, 외국산은 ‘외국에서 제조해 수입해 온 것’이다. 브랜드가 국내 것이냐, 외국 것이냐도 판단 기준이 된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볼 때 국내산 음료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접해온 것’들이고, 외국산은 ‘옛날에는 없었는데 새로 나타난 외국명의 상품’이다. 정서적 기준을 더욱 구체화하면 ‘국내산 식재료로 가공한 상품’이 국내산이고, ‘해외산 식재료로 가공한 상품’은 외국산이다(사실은 외국산 재료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했다면 그 역시 국내산 상품이다. 국내 식품기업들의 각종 음료와 스낵 상품들 대부분이 그렇다). 농수산물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은 화학적 가공품, 탄산이나 이온 음료 등의 경우도 제조 공정의 장소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이 의미 없을 때가 많다. 시끄럽다, 우리 것은 그냥 딱 보면 안다,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파괴력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보고 먹어온 것’이 우리 것인 이유는 무엇인가. 익숙한 것, 받아들인 지 오래된 것에 대한 인정 심리다. 우리 농산물이 아니면서 우리 농산물인 품목들을 몇 가지만 보자.
토마토. 영문 Tomato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농산물이 아닌 듯한데 아무도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들여온 지 3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고구마. 기록으로 보면 1763년에 일본에서 들여왔다. 감자. 1800년대 중국에서 들여왔다. 고추와 호박. 임진왜란 이후부터 재배되었다.
사과. 1900년대 초 외국 선교사들이 들여온 것이 지금의 사과라는 게 정설이다. 우리 고유의 능금과는 다른 종이라고 한다. 포도도 그즈음부터 재배되었고 제주도 감귤은 일제강점기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수산물은 어떤가. 바다에도 국경은 있지만 물고기들이 국경을 지킬 리는 없다. 한국 오징어가 일본해협으로 건너가지 않을 리 없고, 남서해의 한국 돔이 중국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 리 없다. 수산물은 잡는 사람의 국적이 임자다. 한국 어선이 뉴질랜드 인근에서 잡은 전갱이는 한국산이다. 북태평양에서 잡은 명태는 어선의 국적이 곧 그 물고기의 원산지가 된다.
세상의 기준은 매번 바뀐다. 과거에는 10년, 20년 유지되던 기준이 요즘은 1~2년 만에 바뀌기도 한다. 너무 빨리 바뀌어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은 노인들이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은 시기다. 어리둥절해하다가 코를 베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무엇이 어떻게 왜 변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봐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주장하고 관철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바뀌어 갈 세상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