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만나러 가는 소년이 기차에 오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는 아직 모른다.
고향에 다시는 못 돌아오리라는 것을.
이렇게 끝나는 소설이 있다. 시작은 설레는데 나중은 슬퍼진다. 반대로 느낄 수도 있다. 계획도 없이 떠나야 하는 처지가 슬프고, 고향에 꼭 돌아오지 못하면 어떠냐고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한국의 노인들 상당수가 소년 시절 무작정 기차에 오른 이들이다. 그리고 어찌됐든 살아냈고, 자식들을 키워냈고, 나름의 성공을 이뤄냈다. 그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마치 운명의 장난 혹은 질곡의 압축을 보는 것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큰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로 인식이 바뀌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두 달에 불과했다.
치유 불가능한 습성이라며 수십 년 동안 자책하던 ‘빨리빨리’ 문화가 ‘놀라운 능력’으로 재평가받게 된 것도 순간이었다. 그러자 그 동안 무시하고 제쳐놓고 하찮게 내버려두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중 몇 가지다.
“우리나라에서만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민들의 수준, 택배와 배달 시스템, 모바일 소통 능력 등등을 말하지만 핵심은 쌀 자급률입니다. 주식(主食)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재기에 나서지 않게 된 겁니다.”
-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
“우리나라 산림녹화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모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빠르게 산림을 복구한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 산림청 관계자
“방역 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게 코로나19 사태로 증명됐는데 이게 단기간에 가능한 게 아닙니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가축질병을 해결해 가면서 쌓은 노하우 등 동물방역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런 경험들이 모여 바이러스 대처 능력이 생긴 겁니다.”
- 수의과학검역 관계자
농림축산 분야 곳곳에서도 놀라운 힘들이 발견되고 있다. 분야를 넓히면 이보다 훨씬 대단한 것들이 줄줄이 나온다. 모두 DNA 덕이다. 그 DNA를 만들어준 이들은 바로 우리의 부모이고, 그들은 모두 무작정 기차에 올랐던 소년소녀였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이태원을 위태원으로 만든 자식들에게 당부한다. 운명을 만나러 떠나는 소년은 바라지도 않는다. 고작 향락만을 위해 다된 밥에 재를 뿌린 죄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향락을 비난하지는 않을 테니, 숨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옛말이 되어 죽어버린 표어가 새삼 떠오른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오늘도 계속 이런 문자가 오고 있다.
*4.29.~5.6. 이태원클럽 방문자는 증상유무 관계없이 검사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