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
대로변의 어느 건물 앞에 잠깐 주차를 한 적이 있었다. 잠깐 사이였는데 차창에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었다. 단속원들의 솜씨가 참으로 귀신 같았다. 훤한 길가 어디에도 단속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명확한데도) 기분이 상했고 오금이 저려 왔으며 그러자 오줌이 마려웠다.
주차위반 딱지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데 인도 위에 야쿠르트 아줌마의 손수레가 보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들고 있던 주차위반 스티커를 손수레 위에 붙여 놓고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화장실을 찾아갔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니 나름 기분이 전환되었다. 까짓 과태료가 얼마나 되랴, 개운하게 잊어버리자는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섰다. 그때 인도 위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았다. 종이 한 장을 들고 반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순간 당혹감이 찾아왔다.
“아주머니, 그 스티커는 제 거예요. 장난삼아 붙여놓은 건데, 당황하셨나 봐요. 죄송합니다.”
아줌마의 표정이 일거에 바뀌었다.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색이 졸지에 풀리며 이번에는 붉게 변해 갔다. 화를 내면 어쩌나, 불안했다.
“세상에, 난 또 여기에 붙인 건줄 알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어요.”
아줌마는 크게 놀란 게 분명했지만 금세 평정을 찾았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나 싶으면서 웃음도 나왔다. 거듭 사과하고 돌아서려는데, 이분 갑자기 가방을 열었다.
“간 떨어질 뻔했는데 아니라니 다행이에요. 속은 그쪽이 상했겠네요. 이거라도 하나 드시고 가세요.”
잘못은 이쪽이 했고 사과도 이쪽에서 하고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게다가 ‘마음 편해지게 해줘 고맙다’며 감사 인사까지 한다. 이런 적반하장이라니. 대한민국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만세, 만세, 만만세. 야쿠르트를 먹으며 만세를 부르며 아줌마를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일은 물론 금세 잊었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가방에서 출발한 상품 박스는 손수레를 거쳐 전동차로 바뀌었고 그 안의 내용물은 야쿠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양식으로 채워져 있다. 불가침의 자기 구역을 확보하고 웬만한 자영업 못지않은 소득을 올린다.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도 지난해부터 ‘프레시 매니저’란 직함으로 바뀌었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친숙한 느낌 대신 신선식품을 컨트롤하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이름이 바뀌니 이미지가 바뀌고 이미지가 바뀌니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야쿠르트 본사에서는 이런 이미지 변신 과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동차 도입과 명칭 변경으로 상징되는 혁신의 전 과정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닮아 있다.
2020년 지구촌도 전대미문의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의 계곡을 건너는 와중에 지구에서 가장 핫한 나라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 같은 질박하고 따뜻한 정서, 체계적이고 정교한 질병관리 시스템이 공존하는 나라를 세계가 발견한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더 깊은 분석이 잇따를 터, 그 배경에 농업의 따뜻함과 첨단과학의 냉철함, 시골 감성과 도시 이성을 조화롭게 소화한 나라의 진면목이 드러나리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