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 ‘시시’는 열두 살 때 한 농장의 가정부가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열심히 살았다. 27세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와 결혼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소를 키우고 버터를 만들고 통조림과 잼, 시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렇게 10명의 아이를 키우며 할머니가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살면서 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시시도 그랬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그림물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지만 물감 살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농사지을 힘도 떨어진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 볼까, 미소를 짓고 손자의 그림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과 주변 풍경을 그려 나갔다. 점차 그럴 듯한 그림들이 쌓였고 그 중 괜찮은 것들을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 마을 약국에서도 할머니의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곤 했다. 그 시골 약국에 들른 미술 수집가에 의해 할머니의 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무명인 할머니의 첫 전시회 명칭은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녀 ‘시시’는 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았지만 70대 후반부터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로 살았고, 100번째 생일 때 뉴욕시는 ‘모지스의 날’을 선포하며 이 할머니를 기렸다. 이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시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1600여 점, 이 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것이고, 그 중에는 14억 원에 팔린 그림도 있다. 할머니가 유명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좀더 일찍 그림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토로하곤 했는데, 그때 할머니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늦었다고 말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뭔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이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들이 팔리면 ‘농촌기술 지원금’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70대에 선택한 새로운 삶이 이후 30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며 인생 총평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삶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난해 발행된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내용이다. 물론 이 책은 할머니의 인생보다 할머니의 그림이 중심을 이룬다. 어느 시골 농부의 아내가 조용히, 담담하고 유쾌하게 살아간 인생 후반기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인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민 |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