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의 農에세이] 어느 농부의 아내

  • 등록 2020.02.12 1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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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인생이 바뀐다

시골 소녀 시시는 열두 살 때 한 농장의 가정부가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열심히 살았다. 27세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와 결혼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소를 키우고 버터를 만들고 통조림과 잼, 시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렇게 10명의 아이를 키우며 할머니가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살면서 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시시도 그랬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그림물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지만 물감 살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농사지을 힘도 떨어진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 볼까, 미소를 짓고 손자의 그림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과 주변 풍경을 그려 나갔다. 점차 그럴 듯한 그림들이 쌓였고 그 중 괜찮은 것들을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 마을 약국에서도 할머니의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곤 했다. 그 시골 약국에 들른 미술 수집가에 의해 할머니의 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무명인 할머니의 첫 전시회 명칭은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녀 시시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았지만 70대 후반부터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로 살았고, 100번째 생일 때 뉴욕시는 모지스의 날을 선포하며 이 할머니를 기렸다. 이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시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1600여 점, 이 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것이고, 그 중에는 14억 원에 팔린 그림도 있다. 할머니가 유명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좀더 일찍 그림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토로하곤 했는데, 그때 할머니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늦었다고 말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뭔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이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들이 팔리면 농촌기술 지원금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70대에 선택한 새로운 삶이 이후 30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며 인생 총평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삶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난해 발행된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내용이다. 물론 이 책은 할머니의 인생보다 할머니의 그림이 중심을 이룬다. 어느 시골 농부의 아내가 조용히, 담담하고 유쾌하게 살아간 인생 후반기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인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민 |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골을 잊지 않았고, 농업 농촌을 주제로 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농업-식품-음식을 주제로 한 푸드 칼럼을 다수 매체에 게재하고 있다.


관리자 기자 newsfm@newsf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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