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부 중·소 농약 수출기업들이 ‘자국산(Made in China)’ 상표 대신 ‘한국산(Made in Korea)’ 상표를 붙인 수출용 농약 생산을 위해 우리나라 제조회사와 긴밀히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영농자재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의 N사와 SIPCAM China 등이 ‘한국산’ 상표를 부착한 수출용 농약 생산을 위해 우리나라의 몇몇 제조회사를 방문했다. 특히 N사는 국내 O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한국법인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보다 앞서 SIPCAM China는 국내 H사에서 상당량의 수출용 농약을 생산해 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중국 내 몇몇 농약 수출기업들이 ‘한국산’ 상표가 붙은 수출용 농약 제품 확보를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중국 농약 수출기업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의 중·소 농약 수출기업들은 중동·남미·아프리카 등지에서 소위 ‘China Risk’로 여겨지는 ‘Made in China’ 제품의 저평가 이미지를 탈피할 수단으로 ‘한국산(Made in Korea)’ 브랜드를 위시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스탠다드(Standard) 제품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이미 중국 농약 수출기업들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아직은 실체 공개를 꺼리는 N사의 경우 지난해 여러 차례의 한국 방문을 통해 국내 O사와 ‘Made in Korea’ 상표의 수출용 농약 생산을 위한 MOU를 맺었다. 이에 따라 N사는 한국법인이 설립되는 대로 O사와 협력해 한국에서 수출 전용 농약 등록을 위한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N사의 JACK 국제비즈니스 관리책임자는 “현재 우리 회사의 연간 총매출은 13억 3500만 위안(한화 2500억원)이며, 연평균 수출액은 2억 1900만 위안(한화 410억원) 상당에 이른다”며 “수출용 농약 제품에 ‘Made in Korea’를 붙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수출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JACK 관리책임자는 특히 “중동·남미·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스탠다드(Standard) 제품을 선호하지만, 중국은 OECD 가입국이 아니라서 한국에서 생산한 ‘Made in Korea’ 제품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우리의 수출선 중에 콜롬비아가 OECD 가입국이라서 ‘Made in Colombia’ 제품 생산도 검토해 봤으나 거리상 관리가 어렵고, 수출 대상 국가들의 ‘한국산’ 제품 이미지와 가격 경쟁력도 ‘콜롬비아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아 한국으로 결정했다”며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국산’ 제품도 가격 경쟁력이 별반 차이가 없지만, 콜롬비아·튀니지·모로코·알제리 등의 국가에서는 충분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ACK 관리책임자는 또한 “현재 N사는 케냐·모로코·태국 등에 무역회사를 설립해 수출용 농약의 현지 등록을 하고 있으나, 한국은 생산(제조)시설을 갖춘 회사만이 농약 등록을 할 수 있어 한국의 제조회사와 MOU를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JACK 관리책임자의 말을 빌리면, 우선 대다수 국가에서 ‘Made in Korea’ 제품은 ‘Made in China’ 제품에 비해 신뢰도가 월등하고, 동일 제품이더라도 ‘한국산’ 제품은 ‘중국산’보다 1.5배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중국에서 수출용 농약을 자체 생산할 때보다 한국에서 생산하게 되면 양국의 인건비 격차 등으로 인한 생산비가 다소 증가하겠지만, ‘한국산’ 제품의 가격과 신뢰도를 감안할 때 충분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N사는 현재 기존 수출선(국가)에 수많은 제품이 등록돼 있고, 원제를 자체 생산하기 때문에 브랜드만 ‘한국산’으로 바꿔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JACK 관리책임자는 특히 “중국에는 규모 면에서 N사와 엇비슷한 농약 수출기업이 1000여 회사에 이르며, 이 중에 5~10% 정도 회사들도 우리 회사처럼 OECD 가입국의 스탠다드 제품 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중국의 중·소 농약 수출기업들은 OECD 가입국의 스탠다드 제품 확보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여기에 “레인보우화학(Rainbow Chemical)과 같은 글로벌 수준의 농화학 기업도 파나마 현지에 제조공장을 설립해 브라질 등 남미 여러 국가에 ‘파나마산’ 브랜드를 붙인 농약을 수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SIPCAM China는 이미 ‘Made in Korea’ 브랜드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H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탈리아 SIPCAM OXON의 중국 합자회사인 SIPCAM China는 현재 H사에서 ‘한국산’ 브랜드의 수출용 농약을 생산해 다양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H사의 CEO는 “SIPCAM China의 경우 우리 회사에 원제를 들여와 우리가 직접 생산·포장한(Made in Korea 제품) 상당량의 살충제와 살균제 완제품을 가져가고 있다”며 “최근에도 12톤 가량의 수출용 제초제를 생산해 갔다”고 말했다.
국내 농약회사 ‘Made in Korea’로도 자체 수출 난망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약회사들의 자체 수출실적은 어떤가? 중국이 탐내고 중동·남미·아프리카 등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Made in Korea’ 브랜드를 갖고서도 국내 농약 전체시장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출실적에 머물러 있을까?
‘2023년 농약연보’(한국작물보호협회 발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농약(원제 포함) 수출액은 3435억여원 정도로 같은 해 농약 전체시장 규모(1조 8323억여원)의 18.7%에 그쳤다.[표]
농약업계 관계자들은 그 주된 이유로 국내 메이저 회사들은 오리지널 원제사와의 ‘관계’ 때문에 직접 수출에 나서지 못하고, 마이너 회사들은 수출에 나설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 원제 제품을 생산하는 메이저 회사들은 원제를 들여올 때 원제사와 ‘국내 영업’에만 국한된 계약을 맺기 때문에 해당 제품의 수출을 할 수 없다. 반면, 중국의 농약 수출기업처럼 제네릭 원제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마이너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수출 여력이 부족해 선뜻 수출시장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 회사도 팜한농처럼 자체적으로 원제를 개발·생산해 제품화(‘테라도’ 시리즈) 하거나 제네릭 원제 합성 기술과 생산시설을 보유한 경우 상당한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팜한농의 경우 지난 2021년 708억원, 2022년 1193억원, 2023년 1565억원의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제네릭 회사 중에도 농약 수출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한얼싸이언스의 경우 중국·필리핀 등 동남아 시장에서 ‘연간 1000만불 수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얼싸이언스의 한 관계자는 “동남아 농약 시장의 경우 제품 등록 기간이나 비용이 만만찮은데다, 소위 ‘Made in Korea’ 이미지도 저가의 중국산이나 인도산과 별반 차별화되지 않아 수출에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국내 농약 시장이 열악하다 보니 수출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