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피’하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사람 몸안에 흐르는 액체, ‘피’를 일반적으로 먼저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화투에서 ‘똥쌍피’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농업인들은 논과 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잡초인 ‘피’가 퍼뜩 생각날 것이다.
얼마나 지독하면 농민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서, 혹은 농민의 피를 말린다고 해서 잡초이름도 ‘피’라고 했겠는가?
피는 세계적으로 50여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뛰어난 환경적응성과 종자번식력으로 극지를 제외한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잡초이다. 우리나라는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논에는 주로 논피(강피)와 물피가 많이 발생하며, 밭이나 과수원에는 주로 돌피가 발생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식용피라는 것이 있는데, 조선시대 오곡 중에 하나였으며,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재배면적이 상당하였다. 최근에 식용피의 영양학적 가치가 밝혀지면서, 일부 지역의 소득작물로 재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는 한 번 생기면 제거하는데 피를 말리는 농업인의 골칫거리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피를 어떻게 제거하는 것이 능률적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우선 발생하는 장소에 따라, 그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좋다.
면적이 크지 않은 도시근교의 텃밭이나 주말농장에서는 손이나 호미 등으로 제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다만 피와 같은 벼과 식물은 특성상 뿌리까지 뽑아내지 않으면 단기간에 비슷한 수준으로 재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한다. 반면 대규모 농장에서는 인력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이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종합방제법이다.
무조건적으로 제초제를 살포하라는 말이 아니라 작물의 파종 전에, 토양표면 고르기, 비닐피복 등으로 최대한 잡초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해당 작물에 등록된 제초제를 적절한 약량으로 적절한 시기에 살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초제는 작물 생육초기에 사용하는 관계로, 생산물(과실)에는 제초제 성분이 전혀 없다. 또한, 농작물 생육초기에 잡초를 방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초제는 환경 및 인축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되어 안전하다.
피와 같은 농경지 잡초가 국내 논에는 28과 90종, 밭에는 50과 375종 발생하고 있다. 이들 잡초 중에는 농작물이나 인축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략 논에는 20여종, 밭에는 40여종이 농산물의 수량과 품질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또한 자귀풀이나 가막사리 같은 잡초는 목질화된 줄기로 인해 농기계 작업을 방해하거나 고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가시박과 같은 잡초는 가시가 있어 농민에게 직접적인 상해를 줄 수도 있으며, 단풍잎돼지풀과 같은 잡초는 꽃가루에 의한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농촌진흥청, 대학, 연구소 등 많은 연구기관에서 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잡초를 제거 또는 관리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토양 속에는 4만∼8만립/㎡ 잡초종자가 포함되어 있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지나가는 말로 그까짓 잡초도 연구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잡초가 어떤 조건에서 잘 살고 죽는지 또 잡초가 외부조건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결과에서 농업인들이 힘을 덜 들이고 경제적으로 잡초를 제거 또는 관리할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다’라고 하듯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잡초연구자들은 다양한 연구주제를 가지고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인용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