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진흥청이 보호살균제 ‘클로로탈로닐’과 ‘이프로디온’ 등록회사 29곳에 “10월 30일까지 보완자료를 내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발암성·양서류·대사물 독성까지 신규등록에 준하는 목록이다.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자료의 분량이 아니라 재평가가 시작된 경위다.
이 재평가는 농진청이 스스로 위험 신호를 읽고 착수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유럽에서 퇴출된 성분이 국내에선 사용량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 뒤에야 움직였다. 《관련기사 2026. 9. 30. [인터넷] ‘클로로탈로닐·이프로디온 안전성 재평가 진통’》
농진청은 농약 안전성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기관이다. 클로로탈로닐은 EU가 2019년에, 이프로디온은 2017년에 재승인을 거부했다. 농진청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6년 넘게 등록도, 사용도 그대로 두었다. 그 사이 클로로탈로닐 15개 품목, 이프로디온 6개 품목이 2021년 이후 새로 등록됐고, 등록을 내준 곳도 농진청이다. 그러다 국감 한마디가 나오자 석 달 만에 심의위원회 의결, 출하량 제한, 신규등록 제한이 잇따랐다.
선제적 관리는 없고 지적에 대한 응답만 있는 셈이다. 안전성이 문제라면 국감 전에 챙겼어야 하고, 문제가 아니라면 국감 뒤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재평가는 과학이 아니라 ‘지적사항 처리’에서 출발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절차도 거칠다. 요구 목록에는 투여 기간만 2년 안팎이 걸리는 랫드·마우스 발암성 시험까지 들어 있다. 지금 착수해도 2027년 말 재평가 완료 시점에 맞추기 빠듯한데도 기한은 한 달 반이다. 국내 최초 등록 후 10년이 지난 품목은 대부분 시험성적서를 면제해 온 관행(법)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공동 시험으로 부담을 줄이라”지만 매출 규모가 제각각인 29개 회사가 비용 분담부터 추진 주체 합의 등 일정은 산 넘어 산이다.
그 비용은 결국 농가에 간다. 두 성분의 연간 생산액은 200억 원 남짓이다. 한 제네릭 회사 관계자는 “품목 매출보다 시험비가 더 들어갈 판”이라고 했다. 시험비를 감당한 회사는 약값에 얹을 수밖에 없고, 감당 못 한 회사는 시장을 떠난다. 안전성 재평가가 농약값 인상 요인이 되는 역설이다. 농진청은 “대체 약제가 충분하다”지만, 여러 작용점을 동시에 치는 클로로탈로닐은 저항성 관리의 ‘파트너’ 약제여서 성분 하나를 바꾸면 방제력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
합리적인 길이 없지 않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해 클로로탈로닐 사용을 유지하되 살포량 축소와 수역 완충지대 같은 조건을 붙였다. 유럽·미국·일본이 이미 만든 평가자료를 활용해 국내 조건에 필요한 항목만 추리는 것이 먼저다. EU 농약규정(1107/2009)처럼 오리지널 원제사의 척추동물 시험자료를 보상을 조건으로 공유하게 하면 중복 동물시험과 비용을 함께 줄일 수 있다.
자료의 우선순위와 단계를 정하고, 현실적인 보완계획을 인정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감이 아니라 농진청이 먼저 움직이는 상시 재평가 체계가 있어야 한다. 해외 주요국이 재승인을 거부한 성분은 그때그때 검토 대상에 올리고, 근거와 절차를 공개하는 일이다.
농촌진흥청이 답할 차례다. 국회의원 한마디에는 사실상 ‘즉답’을 하면서도 30년 넘게 등록해 둔 농약의 안전에는 왜 6년 넘게 답하지 않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이 나올 때까지는 ‘10월 30일’이라는 기한부터 현실에 맞게 다시 정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