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고추가 복숭아혹진딧물의 공격을 받을 때 뿌리 주변 미생물 군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해 진딧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기피 반응까지 유도하는 유용 미생물을 찾아냈다. 화학농약을 대신할 친환경 해충 방제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숭아혹진딧물은 고추의 즙액을 빨아 생육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각종 식물 바이러스를 옮기는 대표적인 해충이다. 번식 속도가 빠르고 약제 저항성도 쉽게 생겨 화학농약만으로 방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식물은 병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미생물이 뿌리 주변에 모이도록 신호를 보낸다. 이른바 ‘크라이 포 헬프(Cry for Help)’ 현상이다. 병해충의 공격을 받은 식물 주변에서 유용 미생물이 증가해 식물의 방어력을 높이는 사례도 보고돼 왔다.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진은 이 현상에 주목했다. 군산·군위·함양·장수·순창 등 국내 9개 고추 재배지에서 흙을 채취한 뒤 고추를 심고 복숭아혹진딧물을 접종해 뿌리 주변 미생물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진딧물이 발생한 고추 뿌리 주변에서 텔루리아(Telluria), 라이조비움(Rhizobium), 추자이박터(Chujaibacter) 계통의 미생물이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실제로 고추의 방어에 도움을 주는 균을 찾기 위해 5개 균주를 분리해 비교했다. 가장 일관된 효과를 보인 것은 ‘텔루리아 100-57A’ 균주였다.
이 균주를 고추 뿌리에 처리하자 복숭아혹진딧물 개체군 증가율이 무처리보다 약 40% 낮아졌다. 화학농약 물질인 ASM과 비슷한 수준의 억제 효과였다.
기피 효과도 확인됐다. 고춧잎에 텔루리아 100-57A를 처리한 뒤 진딧물의 반응을 관찰한 결과, 24시간 후 진딧물의 약 67%가 균주를 처리하지 않은 잎을 선택했다. 균주를 처리한 잎을 피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텔루리아 100-57A 처리 잎에 대한 복숭아혹진딧물 기피 반응>

식물 자체의 방어 반응도 활발해졌다. 균주 처리 후 초기 6일 동안 식물 방어와 자스몬산(식물의 생장·발달·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식물 호르몬) 관련 반응, 상처 대응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이 활발해졌다. 연구진은 균주가 고추의 방어 상태를 일시적으로 높여 진딧물 공격에 미리 대비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lant Science’(IF 5.9)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진딧물 억제 활성이 있는 텔루리아 100-57A 균주 및 이의 용도’(10-2025-0177375)에 대한 특허도 출원해 실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한상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과장은 “진딧물 공격을 받은 고추 뿌리 주변에서 증가하는 미생물을 단서로 해충 억제 효과가 있는 유용 미생물을 발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텔루리아 100-57A 균주의 진딧물 억제 원리와 효과를 밝히고 처리 조건과 제형화 연구를 진행해 친환경 진딧물 방제 소재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