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충돌과 물류 경로 재편이 세계 비료 시장의 위험 요인을 ‘일시적 변수’에서 ‘구조적 상수’로 바꿔놓고 있다.” 국제비료협회(IFA)가 지난 7월 런던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시장 역학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개최한 ‘2026 글로벌마켓 컨퍼런스(Global Markets Conference)’에서는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효율화 투자에 나서지 못한 기업일수록 앞으로 타격이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 이틀간 이어졌다.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헤닝 글로이스타인(Henning Gloystein)은 개막 세션에서 “지정학이 이제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주요 경제 지표를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됐다”며 “그동안 헤드라인을 장악했던 단기 수급 펀더멘탈보다 앞선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정학적 침체(geopolitical recession) 국면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제 호르무즈발 물류위험이 '구조'로 굳어져
비료 시장은 원래 에너지·농업 수요·국제무역과 밀접히 연결돼 있지만, 최근에는 지정학적 사건이 이 세 축을 동시에 흔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 인근은 요소(尿素)와 황(黃), 각종 비료 원료의 주요 생산·환적 거점이다. 아거스미디어(Argus Media)의 오언 구치(Owen Gooch)는 “중동이 세계 황 수출의 약 50%, 요소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며 해협 봉쇄가 질소·인산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고 설명했다. 분쟁 기간 차질을 빚은 세계 요소 생산량은 약 550만t으로 추산됐다.
컨퍼런스 시점 기준으로 페르티스트림(FertiStream)의 밀턴 사토(Milton Sato)는 해협 통행량이 평시의 약 30% 수준에서 안정됐지만 여전히 역사적 평균을 크게 밑돈다고 전했다. 또 클러(Kpler)의 줄리아 산투스(Julia Santos)는 “진짜 회복은 발이 묶인 선박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선박이 다시 걸프 지역으로 들어와야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화물 적체와 급등한 운임·보험료, 선사들의 진입 기피가 여전히 교역을 제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매자들은 모로코·인도네시아向 황을 미국·캐나다산으로 대체하고 있고, 선박들은 오만 남부 항로 등 더 우회적인 경로를 택하는 추세다. 일부 패널은 이런 변화가 위기 해소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콘퍼런스 직후 호르무즈해협에서 군사행동이 재발하며 통행량이 다시 줄었다.
액스스마린(AXSMarine)의 위고 루스(Hugo Rousse)에 따르면, 비료는 건화물 해상운송 수요의 4~5%에 불과하지만 조선업계가 컨테이너선·가스운반선 건조를 우선하며 건화물선 공급이 더디게 늘고 있는 데다 탄소배출 규제에 따른 감속 운항까지 겹쳐 선복 확보난이 전방위로 심화하고 있다. 퍼트맥스(Fertmax)의 이대진(Daejin Lee)은 이런 흐름이 이번 위기가 끝난 뒤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황 시장은 분쟁 이전부터 이미 빠듯했다. ICIS의 앤디 헴필(Andy Hemphill)은 러시아산 공급에 대한 제재로 중동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호르무즈 차질까지 겹쳐 세계 황 교역의 절반가량이 이용하는 항로가 막혔고, 4월 중국이 황산(黃酸)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며 최대 스윙 공급자마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산 생산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ICL의 후안 폰 게르네트(Juan von Gernet)는 원료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일부 생산업체가 생산량 조정에 나섰다고 전했다.
세계 농가의 구매력 저하가 수요마저 갈라
공급 차질만이 문제가 아니다. 취약해진 농가 채산성도 수요를 짓누르고 있다. 맥킨지(McKinsey)의 다니엘라 누쉘러(Daniela Nuscheler)는 10개국 5,400여 농가를 대상으로 한 ‘제5차 글로벌 농민 서베이(Global Farmer Survey)’ 예비 결과를 공개하며, 조사 대상 전 지역에서 농가가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한 품목 1위가 비료였다고 밝혔다. 날씨 불확실성 지속 등이 배경으로 꼽혔다.
라보뱅크(Rabobank)의 브루노 폰세카(Bruno Fonseca)는 세계 비료 구매력지수(affordability index)가 2026년 말까지 마이너스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브라질 대두(大豆) 시장처럼 이윤(利潤) 주기가 반전되기까지 통상 8~10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다만, 맥킨지 조사에서는 투자수익이 분명한 곳을 중심으로 생물자재·완효성비료(slow-release fertilizer)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고, 가장 젊은 세대의 농가에서도 구매 결정에는 AI 도구보다 신뢰하는 농업 전문가의 조언이 여전히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은 구매력 압박이 수요를 얼마나 직접적으로 끌어내리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아그로컨설트(Agroconsult)의 클레베르 비에이라(Cleber Vieira)는 “2026~27시즌 브라질 재배면적은 대체로 안정적이겠지만 주요 지역의 인산질 시비량은 줄고 있다”며 “전체 비료 수요가 2025년 대비 최대 700만t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인도는 결이 다르다. S&P글로벌의 사우라브 파틸(Saurabh Patil)은 암모니아 수입이 전년 대비 약 35% 급감했음에도 우선적 가스 배정과 긴급 LNG 입찰 등 정부 개입으로 질소 공급이 안정됐고, 관개 투자 확대로 기상 충격에 대한 대응력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산은 구조적 황 부족과 중국의 수출 제한이 겹치며 여전히 취약한 영양분으로 남아 있다. 페르티스트림의 사토는 이 같은 흐름을 정부가 식량안보를 위해 계속 사들이는 ‘보조금 시장’과 농가·수입업자가 시황에 따라 구매를 미루거나 줄이는 ‘현금 시장’의 분화로 요약했다.
질소·인산·칼리 3대 양분이 세 갈래로 갈려
요소는 컨퍼런스 시점 기준 중국이 수출을 재개하고 호르무즈에 발이 묶였던 화물도 풀리면서 혼란이 다소 진정됐다. 다만, 아거스미디어의 구치는 “시비 적기를 놓쳐 사라진 수요는 되살아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암모니아는 더 오래 고공행진 했다. CMA-OPIS의 마이클 사무엘리(Michael Samueli)는 질소 환산 기준으로 암모니아가 요소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인산은 세 영양분 가운데 가장 타이트하다. 클레어라 로이드(Claira Lloyd)는 인도가 2029년까지 소비량이 약 22% 늘어나는 최대 성장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봤으며, 그 이후에는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지역의 구매력이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면, 칼리(potash)는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티모시 에번스(Timothy Evans)는 칼리 공급망이 호르무즈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돼 있으며, 2025년 시장 변수는 러시아·벨라루스의 정비 리스크와 중국-인도 간 대형 계약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개된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향후 공급 증가는 주로 캐나다·러시아·벨라루스·라오스에서 나올 전망이다.
비료업계 경쟁력은 ‘물량’ 아닌 ‘효율’이 좌우
반 이페런(Van Iperen)의 에릭 반 덴 베르흐(Erik van den Bergh)는 “비료 제품의 가치가 앞으로는 함유 양분의 총량이 아니라 그 양분이 작물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로 평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수비료와 관비(灌肥·fertigation) 시스템, 생물자극제(biostimulant), 인 이용효율 기술이 유리해지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탈탄소도 변수로 떠올랐다. 포텐앤파트너스(Poten & Partners)의 잭 월터스(Jack Walters)는 비료가 EU 암모니아 수요의 약 73%를 차지하지만, 발표된 청정암모니아 오프테이크(offtake) 계약 가운데 실제 비료용은 12%에 그치고 대부분 에너지·산업용 수요자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배출권거래제(ETS), 재생에너지지침(RED) III 같은 정책 지원도 대부분 수요가 아닌 공급 쪽에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CBAMBOO의 가브리엘 로젠버그(Gabriel Rozenberg)는 “보수적인 기본 배출계수를 쓰는 공급업체가 실제 배출량을 검증한 업체보다 CBAM 비용을 훨씬 많이 부담하며, 검증만으로 비용을 절반 넘게 줄인 사례도 있다”며 “유럽 수출기업에게 배출량 검증 역량이 실질적 경쟁우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질소안정제(nitrogen stabilizer)는 효율 전환의 실제 사례다. 페르티글로브(Fertiglobe)의 토마스 만하임(Thomas Mannheim)은 요소분해효소 억제제(urease inhibitor)·질화 억제제가 양분 손실과 포장의 아산화질소 배출을 줄인다는 기술적 근거는 이미 확립됐지만, 농가가 그 환경적 편익의 경제적 가치를 온전히 누리지 못해 채택이 더디다고 설명했다.
IFA는 공통 측정 방법을 마련하고 생산업체와 식품기업 간 협업을 늘려 이 격차를 메우는 ‘질소안정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카이네텍(Kynetec)의 워릭 스텝토(Warrick Steptoe)는 브라질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농가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생물영양제·생물농약이 작물투입재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생물자극제는 이미 브라질 최대의 가치 창출원이 됐으며 시장의 초점이 ‘도입’에서 ‘차별화’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컨퍼런스에서 제시된 핵심 수치를 보면, △중동은 세계 황 수출의 약 50%, 요소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분쟁 기간 요소 생산 차질분은 약 550만t으로 추산됐다 ▲호르무즈 통행량은 콘퍼런스 시점 기준 평시의 약 30%에 그쳤다 ▲비료는 건화물 해상운송 수요의 4~5%에 불과하다 △인도 암모니아 수입은 전년 대비 약 35% 급감했고, 브라질 비료 수요는 최대 700만t 줄어들 수 있다 △인도 인산 소비는 2029년까지 약 22% 늘어난 뒤 증가세가 꺾일 전망이다 △비료는 EU 암모니아 수요의 73%를 차지하지만 청정암모니아 오프테이크 계약 중 비료용은 12%에 그친다 등으로 간추려진다.
이제는 ‘지정학·물류·기술’이 촘촘하게 얽힌다
인공지능(AI)의 시장분석 활용을 다룬 폐막 세션도 같은 메시지를 다른 각도에서 확인시켰다. 가스시장 시나리오 도구와 자동화된 통계 작업, 선적 데이터의 자연어 분석 사례가 소개됐다. 공통된 결론은 유용한 AI일수록 모델의 정교함보다 기초 데이터의 품질과 구조에 좌우되며, 분석가의 판단을 대체하기보다 보조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확인된 시장 지형은 단순한 변동성 확대가 아니었다. 지정학과 물류, 농업경제, 규제, 기술이 갈수록 촘촘하게 얽히고 있다는 것이다. 비료업계가 대비하려면 △지정학·기상 리스크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지역별 구매력을 이해하며,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배출량을 더 세밀히 파악하는 한편 △양분 이용효율을 높이는 제품에 대한 투자 여부를 저울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컨퍼런스가 남긴 결론은 “시장은 개별 충격에서는 회복되겠지만 지난 10년의 안정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신호를 먼저 포착하고 전략을 현지 상황에 맞춰 빠르게 조정하며 혁신으로 제품 가치를 최적화하는 데서 회복력이 나올 것”이라고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