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대량생산과 소비, 고민 없는 폐기를 당연시해 왔었다. 힘이 있는 선진국들은 자유무역 체제를 앞세워 전 세계의 자원을 값싸게 끌어다 썼고, 개발도상국들은 그 자원을 팔아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직 효율성 극대화만이 인류 최고의 선이었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폐기물은 지구 어딘가에 묻거나 바다에 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영원할 것 같던 이 풍요의 방정식은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뽑아 쓰는 자원의 소비 속도가, 자연 스스로 회복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을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미래 인류생존의 지속성에 깊은 우려의 경고등으로 이어졌다. 이제 직선적 경제발전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구조전환, 자원을 아끼고 끊임없이 재활용하는 순환경제, 소유에서 공유로의 전환이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21세기 인류생존을 결정지을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반드시 풀어야 할 6대 과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첫 번째는 인류의 가장 거대한 위협이 된 기후변화와 이에 대한 전 지구적 대처이다. 지구온난화는 세계 구석구석의 모두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를 던지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식량 위기와 계층적 불균형의 해소이다. 지구의 인구수는 어느덧 80억 명 시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3~4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극심한 기근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세 번째는 한정된 자원의 최소사용과 최대 재활용을 지향하는 순환 경제의 구축이다. 쓰레기와 폐기물을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것만이 지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화석연료와의 과감한 이별이다. 세계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풍력, 태양광, 수소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대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다섯 번째는 눈앞에 다가온 AI(인공지능) 기반의 기술 시대에 대한 인류의 현명한 대응이다. 인공지능은 기후, 식량, 순환경제의 난제들을 엄청난 효율로 해결해 줄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이 모든 흐름의 밑바닥에서 은밀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자원 국수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계이다.
이러한 글로벌 패러다임과 거대한 전환 속에서 우리 농업의 현실을 돌아보면 불안하다. 당장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 자급률은 이미 50% 선 아래로 무너진 지 오래다. 만약 국제적인 분쟁이나 예상치 못한 자원 봉쇄로 인해 당장 내일부터 식량 수입이 중단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심각한 문제는 먹거리 생산에 필수적인 농업 투입기자재마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지의 갈등과 전쟁은 글로벌 비료 공급망을 파괴하고, 국제 물류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국내 농산물 생산의 어려움과 생산비용의 상승, 그리고 향후 곡물 가격의 폭등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지속 가능한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안보이자,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농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발전의 패러다임 전환과 과제에 대응하여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분명하다. 내부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고 자원을 아끼면서도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전격 도입한 ‘강한 기후스마트 농업’ 체제로의 신속한 대전환이 시급하다. 정밀 농업을 통해 기후 위기를 돌파하고 원자재 낭비를 막는 기술적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이와 동시에 농업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투입재의 공급망을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게 갖추어야 한다. 국가적 역량을 이곳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대한민국 농업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식량은 국가안보와 결부되어 있다. 언제든 돈만 주면 국제시장에서 식량을 마음대로 살 수 있었던 풍요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강대국들의 탐욕스러운 자원 국수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냉혹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엄중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나라의 근간을 지킬 농업 생존 전략을 전면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급박한 세계 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너무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