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주기로 반복되는 농약 품목 재등록 절차가 국내 농약 제조·수입업체들의 경영을 압박하는 구조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1월 공문을 통해 2026~2027년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총 848개 품목의 재등록 신청을 60여 개 업체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재등록에 나서야 하는 업계는 세 가지 핵심 개선 사항을 농진청에 제기하고 나섰다.
농약 제조업계가 제시하는 개선 사항을 요약하면, △동일 성분·제형 품목에 대한 시험성적서 상호인정을 환경생태독성·약효·약해 분야까지 확대하고 △현행 인축독성 분야에만 허용된 공동시험을 생태독성 분야까지 넓혀 건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시험 비용 중복을 해소하며 △최초 등록 시 안전성이 검증된 품목에 대해 전면 재시험을 요구하는 현행 방식을 위험도 기반의 차등 심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약 재등록 제도는 1997년 농약관리법이 품목고시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도입됐다. 농약관리법 제11조 및 시행규칙 제16조에 근거하는 이 제도는, 최초 등록 이후 10년마다 갱신 심사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정 신청 기한은 유효기간 만료 6개월 전이지만, 농진청은 서류 보완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 9개월 전 선제 신청을 권장하고 있다. 안전 기준의 시대적 반영이라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시행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운용 방식의 비합리성을 둘러싼 업계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진청이 올해 1월 한국작물보호협회와 농약 제조·수입업체들에 발송한 공문 내용에 따르면, 2026년과 2027년 사이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농약 은 총 848개 품목에 이른다. 이를 회사별(건수 상위 15개사)로 살펴보면, △경농이 89건으로 가장 많고, △팜한농 58건 △한얼싸이언스 54건 △동방아그로 47건 △케이씨생명과학 44건 △신젠타코리아 44건 △한국삼공 42건이 뒤를 잇는다. 이어 △농협케미컬과 신농팜케미컬도 각각 31건씩을 안고 있으며, △SB성보 27건 △선문그린사이언스 26건 △인바이오 24건 △바이엘크롭사이언스 20건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래프] 현재 60여 개 기업이 2년 안에 총 848건의 재등록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험기관의 처리 용량과 서류 준비 여력이 동시에 한계에 부딪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농진청은 이번에 의무 제출 서류 목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자체 점검 강화를 주문했다. 이화학 분야에서는 지정 이화학 시험연구기관 또는 GLP인증기관에서 발행하는 공급증명서(수입), 원제조국의 제조처방서(수입), 자체검사성적서, 석면검사성적서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독성 분야에서는 물벼룩 급성독성시험(96시간), 미꾸리 급성독성시험, 미꾸리 야외포장시험, 꿀벌엽상잔류독성시험, 농작업자 노출량측정시험 성적서 등이 필수 제출 대상 성적서로 지정되었다.
농약 명칭 표준화에 따른 단순 명칭 변경이 있을 경우에도 사유서를 별도로 첨부해야 한다. 이 중 단 하나라도 빠지면 품목등록 유효기간 만료 후 등록 취소라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동일 품목 적용 잣대 ‘고무줄’…과도한 시험비 유발
농약 제조업계가 가장 강력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동일 품목임에도 회사별로 시험성적서를 각각 제출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다. 현행 농약관리법상 동일 품목은 주성분·제형·함량(%)이 같으면 동일품목으로 인정한다. 부성분(계면활성제·용제·소포제·pH조절제·안정제·동결방지제·안료) 등의 차이는 동일품목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재등록 과정에서는 이 ‘동일품목’ 개념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가령, 인축독성(급성경구·경피·피부자극·안점막자극·피부감작성·살포자 노출량 시험 등) 분야는 동일 품목이라면 한 회사의 성적서를 다른 회사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반면 환경생태독성(물벼룩 급성독성, 어독성, 미꾸리 등) 분야와 약효·약해 분야는 동일 품목이라도 제조처방의 부성분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성적서를 상호 인정하지 않는다. 농약 제조업계는 이를 두고 ‘고무줄 잣대’라고 비판한다. 같은 법률 체계 안에서, 같은 동일품목 개념을 두고 분야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약 제조회사 한 관계자는 “부성분이 다소 상이해도 약효·약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정설”이라며 “처방 차이가 있으면 약효가 크게 달라지는 것처럼 취급해 성적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용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물벼룩 급성독성시험의 경우 한 건당 700만 원의 시험 비용이 든다. 예를 들어 한 품목에 여러 시험이 필요하고, 해당 업체 간 ‘공동시험’이 허용되지 않아 10개 시험을 진행해야 하는 업체의 경우 한 품목당 7,0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살포자 노출량측정시험은 한 건당 3,500만 원에 이른다. 다행히도 이 시험은 이론적 노출량 산출 시스템인 KO-POEM(Korean Pesticide Operator Exposure Level)을 통해 계산한 값이 농진청 고시 AOEL(Acceptable Operator Exposure Level, 살포자 허용 노출량)을 초과할 경우에만 실시하며, 공동시험이 허용된다. 따라서 해당 품목의 살포자 노출량측정시험이 필요한 업체들끼리 공동시험을 하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가령 7개 업체가 공동시험을 할 경우 한 업체당 500만 원만 부담하면 되는 셈이다.
그러나 환경생태독성 시험은 공동시험 자체가 막혀 있어 시험비 부담을 포함해 형평성 문제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농약 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불합리한 문제점에 대해 ‘클로르페나피르(chlorfenapyr) SC’의 재등록 시험을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이 성분의 해당 제형을 생산하는 업체는 15개사에 달하고 이번에 재등록 시기가 도래했다.
따라서 이들 15개 업체가 ‘클로르페나피르 SC’ 살포자 시험 비용 3,500만 원을 각자 부담하면 총 5억 2,500만 원이 국내 산업계 전체에서 중복 지출되는 셈이다. 그러나 7개 또는 8개 회사가 공동으로 시험을 진행한다면 회사당 438만~500만 원으로 대폭 절감이 가능하다. 만약 15개 사가 공동 참여한 경우라면 시험비용은 230여 만원까지 대폭 낮아진다.
농약 제조업계 관계자들은 “동일 성분·제형에 대해 개별 시험을 강요하는 구조는 자원 낭비이며,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농약 제조회사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토로했다.
농진청이 재등록 과정에서 가장 빈번히 제기하는 보완 요청 중 한 가지가 물벼룩 급성독성시험 성적서다. 과거에는 48시간(48h) 기준의 성적서를 요구했으나, 현재는 기준이 96시간(96h)으로 강화됐다. 이에 따라 48시간 기준 성적서를 보유한 업체들은 추가 시험을 불가피하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기준 변경이 소급 적용되는 구조상 기존에 적법하게 등록된 품목도 재등록 시점에서 다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반발이 크다.
공통 품목의 경우 제조처방서가 같은 회사들 사이에서도 부자재가 일부 달라 동일 보완요청이 10개 이상 회사에 동시에 내려지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는 이 경우 공동시험을 허용해 비용과 행정 부담을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행 규정상 생태독성 분야의 공동시험 인정 근거가 없어 각 회사가 개별 대응할 수밖에 없다.
업계 요구 핵심은 “동일품목 성적서 상호인정 확대”
농약 제조업계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농약관리법상 동일품목으로 인정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분야에 관계없이 한 회사의 시험성적서를 다른 회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상호인정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축독성 분야에 한정된 상호인정 범위를 환경생태독성 및 약효·약해 분야까지 확장하라는 요구다.
업계는 나아가 최초 등록 당시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품목에 대해 10년 후 동일한 시험을 반복하는 것이 과잉 규제라는 주장을 편다. 물론 10년이 경과하면서 환경이 변했을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안전성은 최초 등록 시점에 이미 확보된 것으로 봐야 하며 예외 없는 전면 재시험 요구는 고유가 등 해외 의존도가 높은 농약업계의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특히 인축독성 분야 성적서는 품목만 같으면 인정되는 반면, 생태독성은 부성분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 이중 기준에 대해 정부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동일품목 개념을 농약관리법에 명시해 두고 정작 그 개념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가 존재한다면, 그 개념 자체를 법에 넣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농진청은 기존 안전 기준 강화와 평가의 엄정성이 재등록 제도의 핵심 가치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환경생태독성 분야의 경우 제조처방의 부성분이 달라지면 실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동일 품목’이라는 이유만으로 시험성적서를 일괄 공용하는 것은 안전 기준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읽힌다.
시험 현장의 실무적 어려움도 만만찮아 보인다. 848개 품목에 대한 재등록이 2~3년 안에 집중되면서 시험기관의 처리 역량 문제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지정된 이화학 시험연구기관이나 GLP인증기관의 성적서 수요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경우, 시험 일정 지연으로 인한 유효기간 만료 위기에 처하는 업체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진청이 재등록 제도의 실효성과 업계 현실의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을지가 관건이다. 분야별로 달리 적용되는 성적서 인정 기준을 통일하고, 동일품목 간 공동시험 허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우선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중소 농약 제조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금융 지원이나 공동시험 인프라 구축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농약 산업은 식량 안보와 직결된 기간산업이다. 848개 품목의 연쇄 재등록 과정이 불필요한 행정 비용과 시험 중복으로 인해 업계 전체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 운용의 합리화가 시급한 시점이라는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