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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농약산업 역주행 멈춰야 할 때다

경제논리에 치우쳐 합성원제 생산 포기
농약원제 수입비중 97%…경쟁력 ‘약화’
제조회사 계통가격 인하 압박하는 농협
자체 유통마진 평균 50%…‘불편한 진실’



국내 농약산업은 고질적인 두 가지 난제(難題)를 안고 있다. ‘합성원제’와 ‘유통마진’이 그것이다. 국내 농약제조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비용 등을 이유로 합성(미투)원제를 자체 생산하는 대신 중국산 원제 등을 수입하면서 해외 의존도가 97%를 넘어섰고, 농업인들이 사서 쓰는 농약가격에는 평균 50%가 넘는 유통마진이 붙어 있다. 그러다보니 농약제조회사들은 원제가격의 등락과 수급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하고, 또 농업인들은 과도한 농약가격으로 인해 생산비 절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농약산업의 해묵은 현안문제는 결국 농약과 농산물의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농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합성(미투)원제 국산화 기반구축 절실
하지만 국내 농약산업계는 이러한 고질적 현안문제 해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농약제조회사들은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농약 합성원제생산에 매우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논리에만 치우쳐 중국산 수입원제에 의존하면서 현재 팜한농을 제외하고는 원제생산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원제를 합성하는 것보다 중국산 원제를 수입하는 비용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원제생산시설이 붕괴된 이후 국내에서 생산하는 비용보다 오히려 비싼 가격에 합성(미투)원제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이유 등으로 국내 농약산업의 원제수입 의존도는 지난해의 경우 금액기준 97.1%, 물량기준 88.1%에 달하고 있다.[표1~2]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는 심심찮게 ‘농약원제 수입의존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그때마다 정작 국내 농약산업의 절대과제인 합성(미투)원제 생산시설 확충 등을 추궁하기 보다는 ‘신규물질(원제) 개발’만을 강요하는 ‘무지함’을 드러냈고, 농진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농약원제 개발은 최소 10~20년이 소요되고 개발비용도 적게는 2500억원에서 많게는 6000억원 가량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여건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원제회사들도 쉽지 않다’는 등의 해명으로 빠져 나가기 일쑤였다. 중국산 원제 딜러사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확한 문제제기가 되려면 국회의원은 ‘합성(미투)원제 국산화 대책’ 등을 추궁해야 하고, 농진청은 ‘정부와 농협 등이 연계해 합성(미투)원제의 국산화 기틀 마련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제시해야 맞다”고 지적했다. 


   

원제수입 비용이 농약산업 발목 잡아
국내 농약원제 수급문제는 이렇듯 핵심을 비켜난 근시안적 사고에 안주하면서 ‘수입’ 말고는 달리 해결책이 묘연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결국 중국의 원제생산 여건이나 환율변동 등은 국내 농약산업에 부메랑이 되고 있으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악제가 겹치면 고스란히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농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일 무역분쟁 당시 일본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사용하는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면서 “국내 농약업계가 일정부분의 미투원제 생산능력만 유지하고 있어도 중국산 수입원제의 가격 견제가 가능하고, 유사시 국내 생산량을 일정부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농약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된 이후 국가간 장벽이 높아지면서 농약 원부자재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농약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실상 ‘무방비’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농협 유통마진 합리화…농업 경쟁력
국내 농약산업의 또 다른 심각성은 농약 유통마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농약회사와 농업인 사이에서 농약유통을 지배하는 농협과 시판(도매상 포함)이 50%가 넘는 마진을 챙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농협은 해마다 계통농약 공급계약 과정에서 제조회사들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농협조직이 챙겨가는 유통마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농협 계통농약은 △2016년 0.8%(↓) △2017년 3.3%(↓) △2018년 1.2%(↓) △2019년 5%(↓) △2020년 1%(↓) 등 해마다 가격을 인하했다. 그러나 농협의 이같은 농약가격 인하조치는 농업인에게 그 혜택이 직접 돌아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다시 말해 농협이 농약제조회사들의 계통공급 가격에 손을 댈게 아니라 농협의 유통마진을 합리화하면 농업인들에게 그만큼의 실질적인 혜택을 돌려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농협의 계통농약 판매가격은 시판농약 가격에도 상당부분 반영되기 때문에 과도한 유통마진에 따른 농약가격의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농약회사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국내 농약시장을 반분하고 있는 농협은 연간  7300억원 상당의 계통농약을 취급하면서 매년 농약회사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사실 농협계통에 참여하는 농약회사들은 농협의 장려금과 리베이트 등의 마진을 제하고 나면 농협으로부터 연말에 결재 받는 금액은 절반밖에 안된다”면서 “농약회사가 농협계통공급(납품) 농약가격을 인하해봤자 농업인 판매가격에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농약회사의 경영악화만 초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협이 정작 농약 판매가격을 낮춰 농산물 생산비 절감을 통한 농가소득 향상을 꾀한다면 농협 자체 유통마진을 대농업인 판매가격에 녹여내 농약회사를 옥죄지 않고도 농약가격을 현실화하는 ‘솔직함’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출 최대품목 ‘바스타’…유통마진도 고공
미투품목 마진은 결제가격 3배 상회(上廻)
  
지난해 작물보호협회가 발간한 ‘농약연보’의 의하면 국내 농약시장 규모는 1조4760억원 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를 전국의 농협과 시판 몫인 평균 50%의 유통마진을 단순대입하면 7380억원에 이른다. 실제로 국내 등록농약 중에서 연매출 593억7600만원을 기록하며 단연 ‘1위 품목’으로 자리매김한 비선택성제초제인 ‘글루포시네이트암모늄’ 제품의 경우 500㎖ 병당 판매가격(표시가)은 1만1000~1만3000원이지만, 농약회사가 농협과 시판에 납품하는 가격(연말결제가)은 6000원 남짓에 불과하다. 물론 농협과 시판에서 지역별·수량별로 판매가격에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략적인 유통마진은 50%대를 넘나들고 있다.


농약업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농약가격’을 간단히 요약하면, 오리지널 제품(단독품목)이 국내에 등록될 때부터 향후 10년 동안은 “원제사가 폭리”를 취하고, 미투농약이 등록될 때부터 “농협과 시판 등 유통조직의 마진은 더욱 급등”하는 구조 속에서 “제조회사도 재미”를 보는 연결고리가 “농업인들에게만 피해를 전가”하는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다.

   
복수의 농약회사 유통망을 통해 자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글루포시네이트암모늄’ 제품가격은 오리지널 품목인 ‘바스타’의 경우 △성보화학이 500㎖ 병당 6000원(연말결제가)씩 시판에 공급하면, 시판은 이를 농업인에게 1만3000원(표시가)을 받는다.[표3] 또 △농협케미컬은 500㎖ 병당 1만1000원(표시가) 하는 ‘바스타’를 일선농협에 공급하면서 15%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경농은 500㎖ 병당 1만2500원(표시가) 하는 ‘신스타’를 4400원에 공급하고 있다.


‘글루포시네이트암모늄’의 미투품목은 판매가격(표시가)과 납품가격(연말결제가)의 편차가 더욱 극심하다. △인바이오가 시판에 공급하는 ‘프로비스타’의 경우 500㎖ 기준 대농업인 판매가격(표시가)은 1만1000원인데 반해 연말결제가격은 3500원에 불과하고, 시판이 당월에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3100원만 받는다. 시판은 ‘프로비스타(500㎖)’ 한 병을 팔아 7500~7900원의 마진을 남길 수도 있는 셈이다. △신농의 ‘하이스타프러스’ 역시 인바이오의 제품과 유사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에이팜’ 미투 ‘올투인’·‘리치팜’ 마진 천정부지
국내 원예용 살충제의 대표주자인 ‘에마멕틴벤조에이드’ 제품가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해 244억4600만원어치가 팔리는 ‘에마멕틴벤조에이드’ 제품가격은 △오리지널 품목인 신젠타 ‘에이팜’의 경우 농협과 시판에 250㎖ 기준 3만7400원 가량(연말결재가)에 납품하면, 농협과 시판이 농업인들에게 병당 5만5000원(표시가)을 받고 판매한다.[표3] 하지만 미투품목인 △티아그로 ‘올투인(250㎖)’의 경우 시판은 6800원(연말결제가)에 사서 농업인에게 2만3000원(실거래가) 가량을 받고 팔아 3배가 넘는 이익을 남길 수도 있는 가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바이오의 ‘리치팜’ 역시 농업인에게 판매하는 가격(실거래가)은 2만2000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시판이 연말에 결제하는 가격은 6500원에 불과하고 당월 현금가로는 6000원이 전부다.



다만, ‘에이팜’으로 대표되는 ‘에마멕틴벤조에이드’ 제품은 지역별·채널별(도·소매상)·거래처별로 가격 차이가 상이했으며, 표시가격에 비해 실거래가격은 매우 낮은 편이다. 또한 당월 현금결제가격은 회사별로 8~12%의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제네릭(Generic)회사의 경우 원부자제 수입가격 변동에 따라 가격변동이 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이 나서야 유통도, 원제도 풀린다”
이처럼 국내 농약시장의 체질(농협과 시판상의 지나친 유통마진)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안으로는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있다. 농약산업의 구조적 부실(원제수입 의존도) 역시 앞으로도 해법을 제시하기에 분명한 한계를 내비치고 있다. 무엇보다 농약산업은 농업 경쟁력과 가장 지근거리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국내 농약산업의 체질 개선이 절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농약업계와 유관기관(농식품부, 농진청 등) 및 농협중앙회가 국내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농약산업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