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간 농약업계의 화두(話頭) 중에는 PLS(Positive List System)제도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PLS제도는 국내에 등록된 농약의 사용만을 허용하고, 이외의 농약은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모든 농산물에 잔류허용기준(Maximum Residue Level)을 설정하고, 만약 MRL이 설정되지 않은 농산물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될 경우 일률적으로 0.01ppm(㎎/㎏)의 잔류허용치를 적용한다.
MRL 설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Factor)로는 우선 국민체중 평균값을 정해야 하고, 농약성분별 1일 섭취허용량(ADI, Acceptable Daily Intake) 설정과 독성시험결과치인 무작용약량(NOEL, No Observable Effective Level)을 정해야 한다. 또한 식품별 평균 섭취량 등을 반영해 MRL을 설정한다.
따라서 MRL 설정 과정의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농약회사들의 농약품목등록을 위한 작물잔류시험성적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기준으로 MRL을 설정하고, 농약관리법에서 정하는 수확전 안전사용기준(PHI, Pre Harvest Interval)이 농촌진흥청 고시로 확정되고 있다.
여기에서 ‘불협화음’이 인다. 왜 식약처가 농산물의 MRL 설정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의 물음이다. 다시 말해 농진청이 농약성분별 작물잔류시험성적서를 제공하기 전까지는 식약처가 MRL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실(其實) MRL과 PHI는 농약등록과 동시에 설정·고시되는 것이 논리에 맞다. 그러나 현실은 식약처가 농진청으로부터 농약성분별 작물잔류시험성적서를 넘겨받은 뒤에야 MRL 설정에 나설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지연으로 PHI도 통상 농약이 등록된 뒤 수개월이 지나서야 고시되는 실정이다. 결국 농약회사들은 농약을 등록해 놓고도 MRL 설정 지연으로 인해 상당기간 고시된 PHI도 없이 농약을 생산·판매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이제라도 농진청이 MRL 설정 권한을 돌려받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진청이 MRL 설정 권한을 갖게 되면 농약등록과 동시에 MRL과 PHI를 고시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농진청은 농약관련 전문가들이 가장 많은 기관이고, 그래서 MRL 설정업무도 가장 확실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MRL 설정을 둘러싼 ‘불협화음’은 PLS제도 시행 이후에 더욱 커진 느낌이다. PLS제도는 식약처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시행됐다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홍보’에만 매달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반면 농진청은 PLS제도를 뒤쫓기 위해 지난 2~3년간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소면적 작물 농약품목등록시험에 허덕이고 있다.
물론 부처간 사전협의를 거치고, 또 관련업계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농약제조·판매업계는 여전히 아쉽고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바꿔 말해 농약관리법 상의 PHI 만으로도 PLS제도를 대신해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농식품부와 농진청은 과도하리만치 촘촘한 ‘농약판매기록제’를 만들어 농약제조업계와 농약판매업계의 희생을 강요하는건 아닌지 되짚는다.
PLS제도, 그 자체만으로는 ‘완벽’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수히 많은 소면적 작물에 대한 직권변경등록 시험을 추진하는 것까지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가령 A농산물(플럼코트, 겨자채 등)에 대해 B농약을 직권변경등록 시켜줄 경우 C, D, E, F 등의 농약을 생산하는 농약회사들이나 또는 농민들이 C, D, E, F 등의 농약들도 등록시켜 달라고 할 때 TMDI(Theoretical Maximum Daily Intake, 1일 이론적 최대 섭취허용량)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직권등록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또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언제까지 확보가 가능할 것이며, 자칫 예산이 부족해지면 그 모든 비용(1성분 기준 3000만원, 혼합제는 4000~5000만원)을 농약제조회사에 떠넘기는건 아닌지도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농식품부와 농진청, 식약처도 최근 환경부가 화학물질관리법의 안전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고시를 시행키로 결정한 규제완화 조치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한민혁 기자 | newsfm@newfm.kr